[단독]선박법 어기고 국내 해상풍력 현장 온 中 선박…그 뒤엔 중국 국영기업

전성필,황민혁 2024. 10. 3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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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기계’로 세관 신고 후 목포항으로 입항
곧바로 낙월해상풍력 모노파일 설치 작업 투입
중국 국영기업 ‘쩐주’ 의혹에 불 붙여
중국 국적의 대형 크레인 선박 순이(ShunYi) 1600호 모습. 순이 1600호는 국내법을 어기고 목포항으로 입항한 뒤 낙월해상풍력 사업 건설 현장에 투입됐다. 중국 해양엔지니어링 업체 홈페이지 화면 캡처

전남 영광군 해상 일대에서 추진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낙월해상풍력 사업 현장에 중국 선박이 불법적으로 투입돼 공사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사업에 활용되는 외국 국적의 선박의 경우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법 규정을 따르지 않고 건설장비를 들여오는 것으로 신고해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런 과정을 중국의 국영기업인 중국교통건설유한공사(CCCC)가 주도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중요 이정표가 될 낙월해상풍력 사업이 중국 자본에 잠식되고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3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6일 밤 중국 국적의 대형 크레인 선박 순이(ShunYi) 1600호가 예인선을 통해 목포항에서 전남 영광 해역의 낙월해상풍력 현장으로 이동했다. 해양 당국의 허가 없이 불법으로 이동이 진행됐다. 현재 풍력발전기 하부구조인 모노파일(해상 구조물 지지용 대형 기둥) 설치 건설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순이 1600호는 길이 123.6m, 폭 58m, 무게 2만9896t에 달하는 대형 선박이다. 최대 1600t에 달하는 크레인 용량을 갖추고 있다. 순이 1600호와 함께 운용 인력 14명도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법에서는 “국내항 간 화물 운송시 내국적 선박만 사용해야 한다”는 ‘카보타지’(Cabotage) 규정이 명시돼 있다. 외국적 선박을 국내에서 운송 등에 활용하기 위해선 정부에 용선 허가 신청을 한 뒤 국내에서 대체할 수 있는 선박이 있는지 여부를 한국해운조합에 확인한다. 대체 선박이 없으면 해양수산부 심의위원회를 거쳐 외국적 선박 활용에 대한 허가를 받는다. 국내 선박을 우선적으로 활용하도록 해 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순이 1600호는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지난 9일 목포항으로 들어왔고 해상풍력 사업 현장까지 이동했다.

순이 1600호의 현재 위치. 전남 영광 인근 해상에 정착해 있다. 베셀파인더 화면 캡처.

앞서 국내에서 관련 행정 절차를 맡은 설치 공사업체인 A사는 지난 6월 텐펑(TianFeng) 10호라는 중국 선박을 낙월해상풍력 사업 현장에 사용하기 위해 군산지방해양수산청에 용선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카보타지 규정에 따라 국내 업체들의 반대가 나오면서 신청이 철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A사는 지난 7월 9일 순이 1600호를 다시 ‘외국적 선박’으로 보고 용선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이 신청 역시 철회했다. 이후 순이 1600호는 지난 9일 ‘기타선박’으로 세관에 신고돼 수입 통관 절차를 거쳐 목포항에 들어왔다. 세관에서는 기타선박으로 신고가 들어오면 관행상 ‘건설 장비’로 구분한다고 한다. 선박으로 볼 경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우회할 방안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순이 1600호를 선주로부터 빌리고 국내로 들여오는 데 중국의 국영기업 CCCC가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장 인력들은 순이 1600호를 한국으로 들여온 주체가 CCCC라고 본다”라며 “중국의 국영기업이 중국 선박을 국내로 무단으로 들여오고 풍력발전기 건설 현장 투입까지 주도한 셈”이라고 말했다.

낙월해상풍력 사업은 국내 풍력 발전 사업 중 단일규모로는 최대 규모(364.8MW) 사업이다. 풍력발전기 64기를 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와 송이도 일원 공유수면에 설치한다. 그러나 사업을 주도하는 실질적인 주체가 중국 자본이라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낙월해상풍력 사업은 국내 업체인 명운산업개발이 사업의 전체 윤곽을 설계하고, 태국 비그림파워가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비그림파워가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에너지건설유한공사(CEEC)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실제 ‘쩐주’ 역시 CEEC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실제 공사에 투입되는 선박까지 중국 국영기업이 관리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내 대규모 해상풍력 사업이 사실상 중국 정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항만 당국은 허가 절차를 무시한 불법 행위라고 보고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이런 방식은 처음 벌어진 사례”라면서 “사전에 합법 절차를 안내하며 모니터링하던 상황이었는데 위법 행위가 발생한 것이라 해경과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A사는 순이 1600호가 선박이 아니라 해상건설장비인 ‘오프쇼어 플랫폼’이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A사 관계자는 “순이 1600호는 한 장소에 고정돼 건설 작업을 수행하는 장비”라면서 “건설장비 수입 방식으로 적법한 계약을 체결해 국내에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어 “순이 1600호 도입 주체도 중국 국영기업이 아닌 한국의 건설사”라고 덧붙였다.

전성필 황민혁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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