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넘어 문학과 독서 관심 급증…텍스트힙 열풍 타고 부활하나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10. 3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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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한강과 ‘텍스트힙’이 만나다 [스페셜리포트]
올해 상반기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커져가는 추세였다. 사진은 1998년 출판 이후 100만부가 넘게 팔린 양귀자 작가의 ‘모순’. (매경 DB)
노벨상 신드롬은 한강 작가를 넘어, 문학을 포함한 독서 문화 전반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2030세대 사이서 부는 ‘텍스트힙’ 열풍까지 더해져 서점·출판 시장 전체가 부활의 기지개를 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출판 산업은 하향 곡선을 그렸다. 책을 읽는 인구가 계속해서 줄어든 탓이다. 국내 성인 독서율은 매년 감소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9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성인 가운데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종합독서율은 43%에 그쳤다. 1994년 독서 실태조사(격년)를 실시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량은 3.9권, 종이책 독서량은 1.7권에 불과했다. 독서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4.4%)’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책 이외의 매체를 이용해서(23.4%)’ 등이 꼽혔다.

그나마 읽는 책도 경제·경영·자기계발서 등 실용 서적 분야가 대부분이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교과서나 자기계발서 외에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서적이 거의 없다. 문학, 특히 에세이 장르 서적을 낸다는 것은, 출판사 입장에서 상당한 도전이다. 타 분야 대비 판매량이 떨어진다. 같은 마케팅 비용을 집행해도, 남는 게 많이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끝없는 부진에 시달리던 출판업계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 반등에 성공했다. 100만부가 넘게 팔린 한 작가의 서적 외에도 다른 문학 작품을 찾는 이가 늘었다. 김기옥 예스24 도서사업1팀장은 “한강 작가의 소설을 찾는 독자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문학 장르의 판매도 증가하는 추세다. 예스24 분석 결과, 수상이 발표된 10월 10일부터 10월 14일까지 5일간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고도 ‘소설·시·희곡’ 분야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60%가량 상승했다”고 귀띔했다.

문학 서적을 ‘구독’하는 독자도 많아졌다. 특히 ‘한강 작가’ 관련 효과가 컸다. 밀리의서재는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인 10월 10~11일 이후 앱 내 한강 작가와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한 검색량이 지난 10월 2~9일 643건에서 6127% 증가한 3만8765건을 기록했다.

출판업계 내부에서는 올해 초부터 시작된 ‘텍스트힙’ 열풍에 노벨상 신드롬까지 합쳐지면서 출판 시장에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가 싹튼다. 텍스트힙이란 글자(text)와 세련됐다는 뜻의 영단어 힙(hip)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글을 읽는 행위 자체에서 ‘멋짐’을 느끼는 것이다. 영국, 미국의 10대 사이에서 퍼지던 ‘텍스트힙’ 현상은 올해 초 국내에 상륙했다.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인식이 강했던 독서는 요즘에는 ‘남과 다른 나만의 독특한 취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1020세대를 중심으로 문학 작품을 찾는 이가 증가했다.

실제로 올해 6월 열렸던 서울국제도서전은 텍스트힙 현상이 두드러진 행사였다. 도서전에는 15만명이라는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렸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도서전을 찾은 총 관람객 수(13만명)보다 약 15% 증가했다. 대다수는 2030 젊은 세대다. 20대(45%)와 30대(28%) 관람객 비중이 전체 73%에 달했다. SNS에는 도서전을 여러 차례 찾아왔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N차 방문 인증샷’이나 출판사 전시에서 받은 도서전 굿즈와 함께 찍어 올린 사진이 넘쳐났다.

특히 ‘시(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전체 시집 판매 중 20대가 26.5%, 30대가 20.2%로 많다. 예스24는 10대 독자에게 팔린 시집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124.1% 증가했다고 밝혔다. 알라딘에서도 2030 여성이 시집에 보이는 관심이 예사롭지 않다. 8월 현재 알라딘 시 분야 베스트셀러 1위인 안희연의 ‘당근밭 걷기’는 전체 구매자의 48%가 2030 여성이다. 1999년생 시인 차도하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미래의 손’ 역시 2030 여성이 전체 49.5%를 구매했다. 박하나 예스24 마케팅본부장은 “굳이 따지면 시는 ‘숏폼’이다. 숏폼에 익숙한 10대에게 시의 짧고 감각적인 언어가 색다른 감성으로 와닿으면서 인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텍스트힙 열기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그동안 독서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30~60대까지 서점을 찾게 만들었다. 예스24 자료를 보면, 한강 작가 작품의 종이책 구매 독자 중 40대가 34.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50대(31.2%), 30대(15.1%), 60대 이상(11.6%)이 뒤를 이었다.

예스24 관계자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한국 문학과 독서 행위의 중요성을 다시금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독자들의 관심은 올해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시적 관심에 그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서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독서 인기 진흥을 위한 방법을 계속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 독서 열풍은 강하게 지속될 것이다. 이미 독자들은 수상 작가의 작품을 넘어 다른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다양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시도할 예정이다.” 밀리의서재 관계자의 얘기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1호 (2024.10.23~2024.10.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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