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핸드폰을 해" 이 말을 겨우 참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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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
중학생을 키우는 많은 부모는 아이가 핸드폰을 내려두고 책에 빠지길 바란다. 나도 당연히 그랬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동네 중학생 엄마들이 모인 단톡방을 본 직후, 아이가 목 아프다고 조퇴를 했다. 단톡방 어떤 엄마 아이는 엉치가 아프다며 조퇴하더니 누워서 유튜브만 '처' 보고 있다고 했다. 얘를 어쩌면 좋냐는 엄마의 하소연이었다.
접두어 '처'를 애한테 써도 될까에 대한 성찰이 올라오던 차, 아까 그 엄마 톡이 다시 올라온다. 아침 조회 후 조퇴해서 다섯 시간째라고 한다. 접두어는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엄마들은 웃으면서도 남의 일이 아니라고 한숨을 쉬었다.
점심 먹고 조퇴한 내 아이는 그에 비하면 나아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지금 폰을 쓰는 시간은 아니니 쓰지 말자고 했다. 아이는 순순히 알았다고 하더니 식탁에 있는 신문을 펼쳤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내가 바라던 풍경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가 싶어서 나도 얼른 내가 읽던 소설 <스토너>를 폈다. 1분도 안 되어서 아이는 금리가 뭐냐고 했다. 남의 돈을 쓸 때 붙는 사용료나 이자라고 말해줬다. 아이는 남의 돈을 왜 쓰냐고, 그 남은 어떻게 그리 돈이 많길래 빌려주기까지 하냐고 다시 묻는다.
염혜란 배우가 찍은 유튜브 영상을 틀어줬다. 이런 유튜브는 괜찮겠지.
30초 보더니 또 묻는다. 은행이 고객에게 받은 100만 원을 왜 허락없이 90만원이나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냐고. 고객이 내일 다시 100만 원 찾겠다고 하면 못 주는 거 아니냐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대답을 했다.
아이가 시원하게 이해한 눈치는 아니지만 나는 얼른 소설 <스토너>로 눈을 돌렸다. 스토너와 로맥스의 신경전이 클라이맥스로 올라가는 중이라 끊기 싫었다. 다행히 아이는 영상을 끝까지 보더니 다시 신문으로 눈을 돌린다. 돌린 지 10초 만에 다시 질문 폭탄이 시작됐다.
"엄마 연준이 뭐야?"
"미국의 한국은행"
"미국에 한국은행이 있어?"
"아,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대장은행이고 연준은 미국 대장은행이야."
"코스피는 뭐고 코스닥은 뭐야?"
"코스피는 삼성, 현대 같은 큰 회사 주식시장 이름이고 코스닥은 중소기업 주식시장이야."
아이의 질문 폭탄은 계속됐다. 연준이 왜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지, 왜 우리나라가 미국 은행 정책에 신경을 쓰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이가 신문 한 단락을 제 힘으로 읽어내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다.
한 줄에 모르는 단어가 두세 개 나오면 읽기 싫어질 법도 한데 끝까지 질문하면서 읽어내는 건 칭찬할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냥 너 보고 싶은 핸드폰 봐'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 National Literacy Trust National Literacy Trust는 영국에 본부를 둔 비영리 기관으로, 아동과 청소년의 문해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
ⓒ National Literacy Trust |
영국의 비영리기관 National Literacy Trust에서도 관련 보고서가 있다. 디지털 미디어 소비가 아동의 읽기 습관에 영향을 미치고, 전통적인 책이나 신문과 같은 긴 형식의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그러니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읽어야 할 거 같은데 이게 폰만 내려놓는다고 단번에 될 일이 아니다. 적응될 때까지 부모가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음을 간과했다. 나는 그 시간을 견딜 자신이 있는지, 그동안 아이에게 성의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돌아본다.
거실 통창의 베이지색 블라인드가 가을 바람에 덜그럭 소리를 내며 창밖의 짙은 초록 풍경을 슬쩍 던져줬다. 블라인드를 주욱 올리자 파란 하늘이 쨍하게 눈에 들어왔다. 신문을 포기한 아이가 소설을 추천해달라 했다.
나는 얼른 이것저것을 펼쳐 놓는다. 맑게 열린 창문처럼, 아이와 나 사이의 공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이 공기가 사춘기따위 잠재우고 오랫동안 지속되길 기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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