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아닙니다" 남방서 타이어 자국 찾아낸 국과수의 기법 [르포]
지난 29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본원의 교통동. 다양한 센서와 컴퓨터 장비가 가득 들어선 공간에서 국산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SUV)차를 놓고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자동차 급발진 주장사고 관련 검증 현장이었다. 이날 테스트는 제동 관련 전자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계적 제동만으로 차가 멈춰설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 끊임없는 가속과 제동이 반복됐다.
가속과 제동에 따른 속도 등 수치는 대형 모니터에 쉴새 없이 올라왔다. 이날 테스트에서는 전자적인 결함이 있더라도 기계적 제동력(브레이크)은 이상 없이 작동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브레이크가 딱딱하게 굳어지도록 설정한 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아서 자동차 정지 여부를 확인했다.
또 다른 연구실에선 적외선 기반 다파장흔적검사기를 통해 사고 흔적을 찾아냈다. 육안으로는 식별되지 않는 사고 흔적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별다른 흔적이 없던 체크무늬 남방에 검사기를 들이대자 타이어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를 본 취재진 사이에서 ‘아’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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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후 급발진 판단 건수는 0
국내 최고ㆍ유일의 과학수사 감정연구기관인 국과수가 이날 언론에 본원을 공개했다. 본원은 국과수 심장부에 해당한다고 한다. 행정안전부 산하 책임운영기관인 국과수는 원주 본원을 비롯해 서울과 부산 등에 지방과학수사연구소 5곳과 출장소 1곳을 운영 중이다.
최근 첨단 범죄가 빠르게 늘면서 국과수가 할 일은 갈수록 늘고 있다. 2019년 60만1336건이던 국과수 감정 건수는 지난해 74만4420건으로 4년 만에 23.7% 증가했다.
급발진 주장사고 감정 요청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관련 감정 건수는 2022년 76건에서 지난해에 117건으로 증가했다. 국과수는 ▶전자제어장치 진단 ▶제동 계통 검사 등 총 10단계 감정 절차를 통해 급발진 여부를 따진다. 국과수는 2020년부터 급발진 주장사고 330여건을 감정한 결과, 실제 급발진으로 판단된 건 한 건도 없다고 한다. 김종혁 교통과 주무실장은 “잘못된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급발진 주장사고가 급증하는 추세”라며 “고령 운전자의 인지 오류 방지를 위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등 첨단 범죄와 '칼과 방패'의 싸움 한창
최근에는 수사기관 전용 보이스피싱 음성 검색 서비스를 구축 중이다. 이미 데이터 2만9000여 건을 기반으로 235개 조직, 633명의 보이스피싱 사기범을 추출했다.
예산·인력은 제자리걸음
이외에도 국과수는 의료방사선(PMCT) 장비 고도화를 통해 부검 정확성 등을 높이고 있다. 사체 부검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손상분석 시스템도 도입할 계획이다. 자살자 등은 사후 심리분석 프로그램을 도입해 자살원인 등도 보다 더 명확하게 규명 중이다.
또 지난해부터는 DNA 데이터 분석 폭을 확대해 1촌(부모ㆍ자식)뿐 아니라 2촌(형제ㆍ 자매) 등으로 실종가족 찾기 범위를 넓혔다. 국과수 김응수 유전자 과장은 “그간 국과수가 유전자 분석 분야에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감정 건수가 빠르게 늘고 있는 데 반해 예산(올해 663억원) 등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한다.
원주=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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