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여행] 기네스북 등재 은행나무와 ‘한국의 지베르니’
경북 안동은 물의 도시이자 댐의 도시다. 지류인 반변천과 몸을 섞은 낙동강이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데다 각각 물길에 축조된 ‘임하댐’과 ‘안동댐’이라는 거대한 두 개의 댐이 가둬 놓은 광활한 호수 주변으로 서정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가을철 안동에서 빼놓지 말고 봐야 할 풍경이 길안면 임하댐 수몰 마을에 있는 ‘용계리 은행나무’다. 나무높이 31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14m의 큰 나무다. 이 나무가 주목을 받는 것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기적처럼 살아남아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내력 덕분이다.
길안초등학교 용계분교 운동장 한편에 700년 동안 뿌리를 내린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1987년 임하댐 건설 계획에 따라 수몰 위기를 맞았다. ‘나무를 살려 달라’는 주민들의 간청에 공사를 맡은 한국수자원공사는 나무를 살리기로 했다.
전 세계적으로 무게 500t 이상으로 추정되는 거목을 이식(移植)한 사례가 없었다.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이식이 아니라 나무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수몰을 피할 수 있는 높이까지 수직으로 들어 올리는 상식(上植)으로 정해졌다. 나무를 철골 위로 올려놓는 데만 2년 넘게 걸렸고, 그 뒤 80여 일 동안은 하루 30~50㎝씩 나무를 천천히 들어 올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그렇게 15m 높이까지 수직 이동시켰고 뿌리 아래에 흙을 채우면서 인공 산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다. 공사에 1990년부터 4년간 26억여 원이 투입됐다.
수직으로 들어 올린 ‘상식’ 방식으로 옮겨진 세계 최대의 나무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 25주 가운데 ‘가장 비싼 은행나무’라는 별칭도 얻었다. 국가유산청은 오는 11월 5일 은행나무 앞에서 상식 3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용계(龍溪)리는 용이 누운 형상으로, 뒤로는 와룡산과 약산을 휘두르고 앞에 물을 둔 마을이다. 이곳에 약계정(藥溪亭)이 있다. 조선 현종 때 영릉 참봉을 지낸 약계 권순기 선생이 강학하던 정자이다. 원래 반변천 옆에 건립돼 있었으나 수해로 유실돼 1897년 수몰 전 마을로 옮겨졌다. 이후 임하댐 건설로 1989년 현 위치로 다시 이건됐다.
길안면에서 유명한 정자는 만휴정(晩休亭)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선생이 벼슬을 내려놓은 뒤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던 곳이다. 정자 옆 반석에는 선생의 유훈인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이 새겨져 있다. ‘내 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이 있다면 오로지 청렴과 결백뿐이다’라는 뜻이다.
만휴정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라는 대사와 함께 정자로 이어지는 통나무 다리 위에서 손을 잡는 장면이 연인들에게 인기다.
안동댐 주변에 비밀의 숲 ‘낙강물길공원’이 있다. 작은 연못을 끼고 메타세쿼이아와 은행나무가 자라고, 연못 속 돌다리와 오솔길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가을에는 울긋불긋 색깔의 향연을 펼친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면 화가 클로드 모네의 그림 속을 들여다보는 듯 환상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모네가 사랑한 지베르니 정원과 닮아 ‘한국의 지베르니’라는 애칭도 붙었다.
이곳에서 하류로 수변길을 따라가면 월영공원에 닿는다. 월영교가 가로지르는 보조호수에는 문보트와 황포돛배가 떠다니면서 풍경을 더한다. 밤에 찾으면 각종 경관 조명으로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 문 보트는 초승달 모양의 전동 레저 보트다. 형형색색의 문 보트 위에서 유유자적한 여유로움을 즐겨볼 수 있다. 하류로 더 내려가 낙동강이 반변천을 만나는 곳에 ‘그라스원’이 있다. 이곳에 핑크뮬리 5만 본이 분홍빛 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용계리·만휴정 등 동안동IC 가까워
토란·대파 등 넣고 맑게 끓인 골부리국
안동은 전국 시 가운데 가장 넓다. KTX나 고속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도 좋지만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이 이동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공유 차량과 공유 킥보드도 시내 등 가까운 명소를 이동하는 데는 편리하다.
용계리 은행나무와 만휴정·묵계서원 등은 당진영덕고속도로 동안동나들목에서 가깝다. 용계리 은행나무는 길안면사무소 앞에서 지방도로 914호선을 이용해 동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약계정' 이정표를 따라 가면 용계리 마을의 약계정을 지나 만날 수 있다. 길이 좁아 주의가 필요하다. 그냥 직진해서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임하댐 호반도로를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휴정 입구 묵계서원 바로 옆 한옥을 최소한으로 리모델링한 만휴정 카페는 차 한 잔을 마시며 쉬어가기에 좋다.
은행나무·묵계서원·낙강물길공원·월영공원·그라스원 모두 입장과 주차가 무료다. 다만 만휴정은 무료주차장은 있지만 입장료 2000원을 받는다.
안동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 골부리국이다. 골부리는 다슬기의 안동 일대 방언이다. 된장으로 맛을 내는 다른 지역 다슬기국과 달리 얼갈이, 토란, 대파 등을 듬뿍 넣고 맑게 끓여낸다. 고추를 더해 얼큰하게, 양념장을 더해 진한 맛으로 즐길 수 있다.
안동=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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