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경험서 우러나는 조언, 아이들에게 큰 힘 되더라고요”
“제가 해주는 말들이 자립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겐 큰 무기가 되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강사를 초청해 강연을 들려줘도 강사가 모든 일을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다 보니 아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 아이들에게 다가올 미래를 먼저 겪었어요. 살면서 겪은 경험들을 얘기해주니 아이들도 더욱 열심히 듣고 더 좋은 관계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김지용(28)씨는 3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립에 성공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줄 수 있게 됐다며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자립 준비를 돕는 멘토단인 ‘바람개비 서포터즈’ 멤버이자 충남아동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위촉하는 ‘이어유 서포터즈’로도 활동 중인 그는 자신의 역량을 더욱 갈고닦아 후배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선배가 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자 멘토로서 활동하는 김씨지만 그 역시 2016년 2월 아동보육시설에서 처음 나왔을 때 수급비 60만원을 제외하면 수중에 아무것도 없는 보통의 자립준비청년에 불과했다. 집에서 어른들에게 배웠을 법한 것을 알지 못했기에 모든 것을 몸으로 부딪히면서 깨달아야만 했다. 쓰레기를 버리는 방법조차 몰랐던 탓에 우편함에 쌓이는 과태료 통지서를 보지 못하고 큰돈을 낸 적도 있었고, 사기까지 당해 빚이 생겼을 정도였다.
당장 돈이 필요했던 그는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보안 관련 일을 시작했다. 그때 그는 노인·장애인 등 소외계층이 소통이 잘되지 않아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릴 적 꿈이었던 사회복지사의 길을 제대로 걸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2019년부터 장애인시설에서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한 그는 그곳에서 1년6개월여를 근무하다가 바람개비 서포터즈를 알게 됐다. 서포터즈 활동을 하면 각종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또래 친구들까지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함께 살던 형이 활동을 먼저 시작했고 김씨 역시 곧 뒤를 따랐다.
그는 “처음에는 단순히 지원을 받고 싶어 서포터즈를 시작했다”며 “그동안 가슴속에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정말 많았는데 기회가 없었다. 강연을 하고 역량강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길 듣고 바로 서포터즈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후배들에게 늘 ‘우리의 배경이 우리 삶의 큰 요소는 아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한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출발선을 바꾸고 싶어하는 후배들, 남들과는 다름을 걱정하는 후배들에게도 ‘우리의 탓이 아니다’고 위로를 건넨다. 경험에서 우러난 진심어린 조언에 후배들은 경청과 열띤 호응으로 응답한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질문과 이따금 주고받는 연락에 그는 후배들로부터 오히려 치유를 받는다.
그가 몸으로 겪고 천신만고 끝에 알아낸 각종 ‘꿀팁’은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가장 많이 알려준 정보는 싸고 좋은 집을 구하는 방법이다. 계약과정 등에서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그가 중간에서 도움을 주며 조율해 주기도 한다.
김씨는 “강연을 하면 아이들이 열심히 경청하고 질문도 많이 해서 ‘내가 준비한 게 쓸모없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관심이 많고 뜨거운 주제는 연애다. 질문도 가장 많다”고 말했다.
연애나 결혼 같은 문제는 비단 후배들뿐만이 아닌 김씨 같은 1세대 자립준비청년들에게도 큰 숙제다. 주거·생활 등 자립준비청년들의 생존과 관련된 지원은 김씨가 처음 자립을 시작한 때와 비교하면 비약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단순한 생활을 넘어 휴학과 입대, 결혼 등 사람이 살면서 겪는 정서적 성장과 발달과정의 문제를 고민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실제로 김씨도 이 문제가 여전히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시설에 살았다는 사실 등을 친구나 여자친구에게 얘기했을 때 좋게 받아들이고 깊어지는 관계가 있는 반면 나를 동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저 다른 이들보다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한 사람으로 봐주면 좋겠다”면서도 “그런 상황에서 오는 상처를 무시하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 같다. 가정을 꾸리는 게 큰 목표인 만큼 결혼할 사람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김씨 같은 멘토가 자립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듯 자립에 성공한 청년들에게도 좋은 경험을 쌓은 선배들은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 착안한 충남아동자립지원전담기관은 멘토들이 후배들에게 진정한 인생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이어유 서포터즈다. 충남형 바람개비 서포터즈인 이어유 서포터즈는 서로를 잇는다는 의미를 가진 충남 방언에 ‘너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의미를 담은 귀(ear)와 너(you)라는 단어가 담긴 중의적 표현이다.
이어유 서포터즈는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으로 후배들에게 각종 정보를 전달하는 데 강점이 있다. 역량강화를 원하는 서포터즈에게는 전문 스피치 강사가 1대 1로 붙어 교육을 제공하고 있어 멘토들의 강연 실력도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타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하기 위해 강연에 참여했을 정도다.
실제로 현재 이어유 서포터즈 회장인 한 청년은 자립과 관련된 강의뿐 아니라 결혼식·집들이 등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필요한 정보에 대해서도 강의하고 있다. 조언을 듣기만 하던 자립준비청년들이 인생의 길목마다 귀중한 조언을 하는 진정한 선배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함유나 충남아동자립지원전담기관 팀장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립준비청년 스스로 가장 좋은 멘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멘토는 이름만 붙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며 “자립지원청년들에 대한 지원은 큰 틀에서 국가와 우리 기관이 담당하지만 그보다 더 촘촘한 일은 청년들만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산=전희진 김성준 기자 heej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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