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한반도뿐 아니라 국제 평화도 위협하는 북·러 야합

이철재 2024. 10. 3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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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1만 명의 병력을 보냈다고 미국 국방부가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민간 트럭까지 동원해 북한군을 최전선으로 신속히 옮기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는 국경에서 40~60㎞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군의 실전 투입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 정치판도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정부 대표단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의에서 관련 정보를 브리핑했다. 정부는 또 우크라이나와 ‘전략적 협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파병에 대해 논의하려고 30일(현지시간) 열린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러시아를 방문했다.

북한·러시아가 손잡는 게 대수롭지 않을까. 결코 아니다. 두 국가의 ‘불장난’이 전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북한군 1만 명 러시아 파병
쿠르스크 최전선에 속속 배치
남의 전쟁 위한 ‘총알받이’ 신세
냉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우선 ‘신냉전’ 대결 구도가 분명히 그려지게 된다. 북한군 파병은 자칫 미국·나토의 더 적극적 개입을 부를 수 있고, 그러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대전으로 커진다. 북한이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받은 기술로 핵·미사일을 고도화한다면 한국 안보뿐만 아니라 국제 평화도 위협할 수 있다. 핵 확산 금지(NPT) 체제가 무너진다. 북한이 외화를 벌려고 핵·미사일 기술을 수출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과 ‘혈맹’으로 묶이게 될 러시아는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 큰 목소리를 내려고 할 것이기에 우리로선 달갑지 않다. 또 북핵을 해결할 수단인 대북 제재망은 러시아에서 구멍이 뚫리면서 사실상 무력화하게 된다. 실전으로 단련된 북한군도 부담이다.

중화기 없는 ‘알보병’ 보내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북한군 경보병. 경무장에 도보로 기동하며 방탄모를 쓰지 않는다. [조선중앙TV 캡처]

그렇다면 북한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떤 활약을 할까. ‘총알받이’로 남의 전쟁에 끌려가 결국 ‘대포밥’으로 생을 끝낼 공산이 크다.

파병 북한군은 쿠르스크 전선에 전개 중이다. 지난 8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공세에 더 집중하면서 쿠르스크에서 전력이 모자란 데 이를 북한군이 메우고 있다. ‘무력침공을 받으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북·러 조약 4조에 따른 조처라고 우길 수도 있다.

북한군은 러시아 군복을 입고 러시아 무기로 무장했다. 독립 부대로 편제되지 않고, 러시아 부대 아래로 들어갔다. 양국은 연합훈련으로 합을 맞춰본 적이 없다. 북·러는 언어가 다르다. 북한군은 러시아 군사 용어 100여 개를 급하게 배웠지만, 러시아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북한군 30명에 통역사 1명을 붙이며, 러시아군 3명도 함께 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북한군을 ‘동맹군’으로 대우할 성싶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전장 환경이 한반도와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현지적응할 시간도 없이 바로 북한군을 쿠르스크로 보낸 것을 보면 그렇다.

러시아는 북한군을 죄수로 꾸려진 형벌대대(Storm-Z)처럼 써먹으려는 듯하다. 형벌대대는 10~15일 기본적 훈련만 받고 바로 전투에 나간다. 적의 사격을 유도해 우크라이나 방어진의 위치를 드러내는 게 임무다. 그래서 생존율은 7%다.

국가정보원은 러시아 파병 병력이 ‘폭풍군단’ 또는 ‘11군단’이라 불리는 특수부대가 중심이라 분석했다. 그러나 앳된 모습의 파병 북한군은 소속만 특수부대지 실제는 경보병으로 보인다. 유사시 두발로 산을 타고 한국 후방으로 침투해 교란전을 펴는 부대다. 그래서 중화기가 없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평원에서 참호를 파고 화력을 주고받는 소모전이다. 드론이 늘 날아다니면서 감시하고 공격하는 21세기 전쟁이다. 북한군이 참호를 박차고 나가면 바로 우크라이나의 포화를 뒤집어쓰기에 십상이다.

방종관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전력개발센터장은 “북한군이 파병 규모를 늘려도 ‘알보병’이라 보급은 물론 화력도 러시아에 계속 의존해야만 한다”며 “러시아가 북한군을 챙겨줄 여력도, 의사도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병 쉬쉬하는 북한의 속사정
그래서인지 파병 여부에 대해 북한은 “그러한 일이 있다면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외무성 입장)이라고 흐리터분하게 둘러댔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은 내부적으로 파병 소식을 쉬쉬하고 있다. 군 장교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장병에게 “훈련을 간다”고 가족에게 거짓말하라고 지시했다. 파병 장병의 가족이 오열해 얼굴이 상하자 이들을 다른 곳에 격리했다. 그래도 알음알음 퍼져 “왜 남의 나라에서 희생해야 하나”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 대표를 지낸 문상균 서울사이버대 교수는 “북한이 최근 무인기로 트집을 걸고 남북 연결로를 폭파하면서 긴장감을 높여 내부를 단속하려는 것 같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고 북한군 희생이 커지면 북한 체제가 동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러시아 파병은 김정은에게 도박이다. 러시아라는 뒷배를 얻어 독재 체제를 지킨다는 데 크게 걸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돼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에 종식한다면 승산이 높아진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딸 판돈을 줄이는 데 우리의 대응 전략이 시작한다. 북한 내부에 파병 소식을 널리 알리고, 파병 북한군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여야 한다.

또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무기 제공도 방법이다. 러시아가 윽박지르지만, 한국을 내치는 게 쉽지 않다. 종전 후 경제를 되살리려면 러시아는 한국에 손을 내밀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적극적 관여는 나토를 우군으로 끌어올 수도 있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나토는 북한 파병으로 한반도 상황을 유럽의 안보와 동조화할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이제 북·러 야합은 한국의 실존 위기다. 냉정하면서도 단호한 대응이 답이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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