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선] K반도체 초격차 회복의 길은

김동호 2024. 10. 3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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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에디터

한국 경제의 기둥인 반도체산업의 위력이 약해졌다. 일주일 전 SK하이닉스의 3분기 반도체 실적이 발표되자 이 상황은 확연해졌다. 올해 3분기 반도체 사업만 놓고 볼 때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에서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내놓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날개를 달면서다. 앞서 지난 8일 삼성전자 반도체사업 수장인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은 실망스러운 3분기 잠정 실적에 대해 사과문을 내놓았다.

「 영원할 줄 알았던 반도체 초격차
AI 등 산업 지각변동 와중에 실종
기업 기살려야 경쟁력 회복 도와

사과문의 요지는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 위기 극복을 위해 경영진이 앞장서 꼭 재도약의 계기를 만들겠다”로 요약할 수 있다. 성과에 대한 자성과 앞으로의 각오가 담겼다. 지금 세계 반도체 산업이 전광석화처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런 성찰과 각오는 만시지탄이라고 할 만하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소식을 보노라면 K반도체 산업은 사면초가 상황을 방불케 한다. 한국경영학회 글로컬 신산업혁신생태계 연구팀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표준 리더십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70점에 그쳐 미국(95)·일본(90)에 한참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부터 차세대 반도체 기술 표준 동맹을 추진해온 미·일에 비해 한국 정부의 대응은 4년 이상 뒤처졌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왜 돈 많은 한국 대기업에 보조금을 주느냐”면서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도 위력적이다. 중국이 범용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면서 한국 반도체의 대(對)중국 수출이 감소세를 보인다. 중국에서 반도체 기술을 한국으로 유출했다면서 간첩죄를 적용해 한국인을 구속한 것은 한국에서 반도체 기술을 배운 중국의 적반하장이지만, 중국이 기술 유출을 언급할 만큼 성장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K반도체 징비록을 쓴다면 지난 10년간 세계 반도체 산업이 지각변동을 거칠 때 한국 반도체 산업은 초격차를 놓쳤다는 현실이 핵심이다. 결정적 전환점은 빅테크의 등장과 함께 AI반도체 수요의 폭발적 증가였다. 여기에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드는 엔비디아는 순식간에 AI반도체의 황제로 떠올랐다. HBM은 GPU와 함께 AI반도체의 핵심 요소다. 대만의 TSMC는 엔비디아의 주문을 받아 AI반도체를 제작해주는 파운드리 사업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SK하이닉스는 이 흐름을 잡아채 HBM을 엔비디아에 공급하지만 경쟁기업들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는 파괴적 기술이 나올 때마다 혁신으로 위기 상황을 돌파했다. 미국·일본에 30년 뒤졌다는 평가를 받을 때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어 일본 경쟁기업을 제쳤다. 2007년 스마트폰이 나와 노키아가 망했을 때 갤럭시를 급조해 위기를 넘겼다. 이때부터 삼성 안팎에선 초격차가 회자됐다. D램 반도체의 패권자로 삼성의 위력은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이제 K반도체가 선두권에서 밀려난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엔비디아와 TSMC의 위력 아래 HBM을 공급하는 정도가 한국 반도체 기업의 현주소다. 더구나 엔비디아의 품질 기준을 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게 됐다. K반도체가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혁신은 당연하다. 여기에 더해 정치권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고 규제로 옭아매는 분위기에선 기업이 마음껏 투자할 수 없다. 국회에선 기업인을 불러내 호통치는 게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 혁신에 전념할 수 있을까. 자칫 정치권의 눈 밖에 날세라 몸조심·입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해외로 나가 공장을 짓는다. 시장 접근 필요도 있지만, 경제안보와 첨단기술 전쟁이 격화된 근래 들어선 기업 유턴이 뉴노멀이다. 미국·일본엔 자국으로 돌아오는 기업 행렬이 쇄도한다. 삼성 스스로 혁신 DNA를 살려 재도약해야겠지만 기업을 규제와 단속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의 삼류 정치 풍토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느 기업인들 과감한 도전에 나설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기업 스스로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단순화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유례없이 경직적인 주 52시간 제도로 기업의 손발을 묶고 경영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과잉 규제로 꼽힌다. 한국 기업들이 잘하길 원한다면 기업이 기(氣)를 펴고 과감한 도전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김동호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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