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삼성전자와 TSMC의 다른 길

2024. 10. 3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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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우 칼럼니스트

TSMC 사외이사 7명 중 6명
IT 전문가·석학이자 외국인
경영 투명성 세계적 모범
이사회·회의도 영어로

삼성전자 사외이사 중
반도체 전문가는 없고
대부분 금융 전문가·前官
경영진 견제·조언 가능할까

성과급 보상체계 등 포함
기업 지배구조 신속히 손 봐야

이달 초와 중순에 각각 발표된 삼성전자와 대만 반도체 기업 TSMC의 3분기 실적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삼성전자는 8일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내놨다. 영업이익이 증권가 컨센서스보다 15%가량 밑돌면서 ‘5만 전자’가 현실화됐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총아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뒤처졌을 뿐 아니라 삼성이 우위를 점하는 D램과 모바일 부문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는 징후가 뚜렷해졌다. 삼성전자 위기론이 점화됐다. 반도체 부문을 총괄하는 전영현 부회장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걱정을 끼쳐 고객, 투자자, 임직원에게 송구하다”는 이례적인 사과 메시지까지 냈다.

9일 뒤 발표된 TSMC 실적은 명실상부한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이 회사의 3분기 순이익은 약 13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4% 급증했다. 증권가의 예상치를 크게 뛰어넘었다. AI 붐이 탄탄한 실체가 있음이 입증되면서 엔비디아 등 AI 반도체 관련 기업의 주가도 급등했다.

삼성전자에 대한 위기론이 확산하면서 그 원인에 대해 많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엔지니어(기술자)를 우대하는 전통의 쇠퇴, 중장기 경쟁력 대신 단기 재무 실적 몰입, ‘삼무원’(삼성+공무원)이란 신조어까지 나온 관성적 일처리와 관료주의, 삼성 특유의 근성을 잠식한 경직적 주 52시간제 등이 그 일부다.

이같이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은 중요하고 타당하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구성, 경영진과 직원의 성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가능케 하는 보상-책임체계 등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의 문제다.

TSMC와 비교해 보면 이 부분에서 삼성의 취약점은 두드러진다. 예일대 전기공학 박사 출신으로 뼛속까지 기술자인 웨이저자(魏哲家)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와 나머지 2명의 사내이사(경영진)는 제쳐 놓자. 초점은 경영진의 독단적 경영을 방지하면서 자문단의 역할도 하는 사외이사들 면면이다. TSMC 사외이사 7명 중 6명이 외국(미국 5, 영국 1) 국적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의 CEO 출신이거나 학계의 권위자다. 피터 본필드 전 BT그룹 CEO, 마이클 스플린터 전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CEO, 모쉬 가브리엘로브 전 자일링스 CEO, 라펠 리프 MIT 전기공학과 석좌교수, 어슬라 번스 전 제록스 CEO, 린 엘젠한스 전 수노코 CEO 등이다. TSMC가 경영 투명성과 주주 존중에서 세계적 모범 기업이라는 점도 유심히 봐야 한다. S&P글로벌 ESG지수 등에 매년 최상위로 랭크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등기이사 10명 모두 한국인이다. 6명의 사외이사 중 반도체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 전문가는 없다. 대부분이 금융 전문가(김한조 전 하나금융 부회장, 김준성 싱가포르국립대학 최고투자책임자)와 전직 관료(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로 채워져 있다. 조혜경 한성대 AI응용학과 교수가 그나마 IT업계 관련자다. 최고의 기술 전문가들로 구성됐고 회의를 영어로 한다는 TSMC 이사회와 비교하면 삼성 이사회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뒤져도 한참 뒤진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이찬희 위원장의 촉구대로 책임경영 실천을 위해 이재용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도 당연히 필요하다. 투자은행인 메릴린치 한국 대표를 역임한 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는 “100% 현금으로만 성과급을 지급하는 삼성전자의 보상체계는 경쟁력이 없다”고 한다. 전사적 주식보상 시스템을 구축해 회사 장기 발전과 개인 업적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문제가 최근 1~2년 사이 시작된 게 아니라 상당히 오래 지속된 ‘숙제’였다는 점에 국민은 충격을 받는 분위기다. 혁신과 근성의 대명사였던 한국 대표기업이 이토록 오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거나 못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이사회 구성이 독립성과 전문성이라는 요건에 충실했더라면 사정이 이렇게 악화됐을까’라는 질문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삼성의 개선 조치에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좌우하는 이사회 구성 등 지배구조 개선이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배병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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