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마담 롤랑의 마지막 싯구
여자의 운명은 남편을 만나며 결정된다지만, 내가 보기에 남자의 운명은 한 아낙의 마음 먹기에 달린 것 같다. 아테네 정치가 테미스토클레스의 말처럼 남자는 여자에 의해 몰락하고, 여자는 자식에 의해 몰락한다. 위대한 남자였든, 몰락한 남자였든, 그 뒤에는 여인이 있었다. 어머니의 경우가 가장 흔하고, 그다음은 아내이고, 그다음은 혈육이고, 그다음은 연인이거나 친구다.
프랑스혁명 와중에 부르봉 왕조의 법부대신은 장마리 롤랑(1734~1793) 자작이었다. 활동적이라기보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그는 신부가 되고 싶었던 귀족이다. 아내 마리(1754~1793)는 몹시 적극적이고 드센 여자였다. 이 여인이 스무 살 연상의 남편을 대신해 지롱드당을 이끌며 흑막 같은 존재로 ‘지롱드파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뛰어난 미모와 지성 그리고 교양을 갖추고 있었지만, 평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귀족의 푸대접을 받으며 공화주의자가 됐다.
혁명과 함께 로베스피에르 치하에서 루이 16세 국왕이 처형되자 남편 롤랑은 도망치고 마담 롤랑 혼자 남았다. 5개월의 옥중 생활을 거친 뒤 단두대에 섰다. 처형 직전에 그는 문득 형리에게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좋은 시상(詩想)이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형리가 그냥 죽으라는 말투로 핀잔을 주며 거절하자 마담 롤랑은 후세에 말로라도 전해 달라며 이렇게 읊었다.
“오! 자유여, 인간들은 너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는가?(Oh Liberty, what crimes are committed in thy name!)” 그리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틀 뒤 피난처인 노르망디에서 아내의 처형 소식을 들은 롤랑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권위주의 시대를 거친 뒤 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자유가 넘쳐 마치 혼돈과 같은 시대를 살면서 왜 자꾸 롤랑 부인의 말이 떠오르는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난 머리만 대면 잠들어" 치매 부르는 엄청난 착각 | 중앙일보
- "5초만 만져보자, XXX"…KTX 여승무원·여승객 울린 '막말 노인' | 중앙일보
- 100번 부르거나 ‘출장 서비스’…검찰이 쥔 ‘선택적 소환’ 특권 | 중앙일보
- 코로나도 제쳤다…작년에만 125만명 목숨 앗아간 '이 병' | 중앙일보
- 11세 소녀 죽은척해 살았다…미 대저택 '일가족 살인 사건' 전말 | 중앙일보
- "이정도면 사기"…홈쇼핑서 때처럼 밀린 '발 각질' 황당 정체 | 중앙일보
- '사생활 논란' 트리플스타…서울시 "행사 출연 예정대로" 왜 | 중앙일보
- 압구정 아파트 화단 파헤치던 男…주민에 '묻드랍' 딱 걸렸다 | 중앙일보
- '생방 중 욕설' 안영미 사과…"벌거숭이 임금님 된 것 같다" | 중앙일보
- 고깃집 40인분 '노쇼' 정선군청, 논란되자 "최대한 보상할 것"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