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의 전설 김홍열 “한국서 국제대회, 감격스럽네요”

고봉준 2024. 10. 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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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텐(사진 가운데).

“브레이킹은 단순한 춤이 아닙니다. 파리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던 어엿한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개인의 자아를 발현하는 수단이지요. 무대에서 춤을 출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자유’를 느낍니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CJ E&M센터에선 열린 ‘얼티밋 배틀 프리젠티드 바이 비비고’. CJ그룹이 후원하는 브레이킹 국제 대회였다. 대회에 출전한 한국 브레이킹의 ‘살아있는 전설’ 김홍열(40·활동명 홍텐)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8월 파리올림픽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김홍열은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실력을 겨루다니 꿈만 같았다. 내가 춤을 시작했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이런 분위기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올림픽에 이어 이번엔 국내에서 큰 규모의 국제 대회가 열리다니 감격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11개국 46명의 선수들은 몸을 던지며 화려한 기술을 뽐냈다. 200명이 넘는 관객들은 환호성을 보내며 열기를 고조시켰다.

우승을 차지한 뒤 기념촬영을 하는 김홍열 등 레드불 비씨원 올스타 선수들. [사진 CJ그룹]

‘비보잉’으로 불리기도 했던 브레이킹은 1970년대 초반 미국 뉴욕에서 힙합 댄스의 한 장르로 태동했다. 이전까지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거리 문화로 여겨졌지만, 고난도 기술과 예술성이 결합하면서 스포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여성 댄서의 비중도 커지면서 공식 명칭이 ‘비보잉’에서 ‘브레이킹’으로 바뀌었다.

김홍열은 “프랑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브레이킹에선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런데도 파리 시내를 지날 때면 팬들이 알아보고 응원을 해줬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달라진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홍열은 14세 때인 1998년 처음으로 브레이킹을 접했다. 2000년대 들어선 국내 브레이킹의 일인자로 우뚝 섰다. 이날 열린 얼티밋 배틀에선 불혹의 나이에도 레드불 비씨 원 올스타를 이끌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평소 브레이킹을 후원하면서 국제대회까지 개최한 CJ그룹에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CJ그룹은 2021년부터 김헌우(윙)와 박인수(킬), 전지예(프레시벨라) 등 브레이킹 선수들을 후원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얼티밋 배틀을 개최해 세계적인 선수들을 한국에 초청했다.

김홍열은 “비인기 종목인 브레이킹을 후원해주는 회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도 브레이킹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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