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하지 않아도 좌절금지” 수능 앞둔 청각장애 학생들

정고운 2024. 10. 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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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농인들의 이야기②
2주 남은 수능, 입시 치르는 농인 학생들
대학 문턱 곳곳에 장애물… “꿈 꺾을 순 없어”


2025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4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국 입시판에 긴장감이 감도는 한편, 수능을 앞두고 바빠진 건 특수학교에 다니는 수험생들도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농인 학생들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입시에 매진하고 있다.

일타강사 없고 생기부 부족하지만… 힘차게 달린 3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강주영(17·여)씨는 수시전형 준비에 한창이다. 강씨는 이제껏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지 않고 독학으로 공부해왔다. 내신 대비를 위해 학교 수업에 집중하고 모르는 부분은 선생님께 따로 여쭤본다.

그러나 음성 언어와 수어가 섞인 수업을 완벽히 따라가긴 쉽지 않다. 강씨는 “선생님의 입 모양을 알아듣지 못해 진도를 놓친 적도 있고 내가 모르는 수어를 하시면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부족한 부분은 인터넷 강의로 보충한다. 영상에 자막을 제공하는 업체가 드물어 유명 강사들의 강의는 볼 수 없었다. 대신 자막 서비스가 있는 EBS 강의를 주로 듣는다.

강씨는 교내 모든 활동에 참여하고 학급회장과 전교 회장을 역임했다. 진로 관련 독서 활동까지 게을리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농학교는 일반 학교에 비해 동아리와 교내 활동이 많지 않아 생활기록부 전형에 불리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족함을 메우려 최선을 다했는데도 관심 분야를 보여줄 수 있는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고등부 유도 선수 서모씨(18·여)는 수업이 끝나면 유도장으로 향한다. 운동에 집중하느라 공부 시간이 많진 않지만 쉬는 시간 틈틈이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 서씨는 “청각장애인은 청력이 약한 대신 시각이 발달해서 글자 습득력과 집중력이 좋다”고 했다. 그가 학교 수업을 무난히 따라갈 수 있는 이유다.

같은 농인이라도 사람마다 들리는 정도가 달라 학생들의 수업 진도는 천차만별이다. 서씨는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귀가 들리는 청인 학생들과 똑같은 내용을 배운다”며 “공부할 양은 많은데 배움이 느리니 청각장애인으로선 답답할 때가 있다”고 밝혔다.

“그 학과는 일반 전형에만…” 벽 앞에 좌절도

김씨가 학과 동기들과 찍은 사진. 김씨 제공

농인 대학생 이미정(20·여)씨는 지난해 23학번 새내기가 됐다. 설렘과 걱정을 안고 입학한 학교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학과 모임에 참여하며 그토록 기대했던 대학 생활을 즐겼다.

이씨는 험난한 수험생활을 거쳤다.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자기소개서였다. 한국어가 제2 언어인 농인에겐 글을 쓰는 일이 버겁다. 이씨는 “부족한 필력이 티 날까 봐 싫었다”면서도 “쓰다 보면 옛 추억이 떠올라 학교생활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장애인 전형으로 특수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원래 지망학과는 체육교육과였지만 대부분 대학에서 해당 학과는 일반 전형으로만 지원할 수 있었다. 지원하려면 청인 학생들이 치는 시험을 봐야 했다. 이씨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포기했다. 그는 “일반 학교와 농학교는 수업 진도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시험을 보긴 무리였다”고 토로했다.

대학생 김서영(21·여)씨는 농학교를 졸업했다. 일반 학교에 다닌 적도 있지만 청인 학생이나 선생님들과 소통하기엔 어려움이 컸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은 농인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그들과 자연스럽게 섞이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어 “내 정체성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몰라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보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대입 면접 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생활기록부를 수도 없이 보면서 과거 활동과 본인의 강점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말할 수 있도록 연습했고, 친구들과 서로의 면접관이 돼 모의 면접을 치렀다. 대학생이 된 선배에게 도움을 청해 자주 나오는 질문을 파악하는 건 기본이다.

그러나 대망의 면접날, 김씨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대학에서 배치한 면접 안내원이 수어를 몰라 면접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 면접장에서 김씨가 수어로 준비한 말들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면접관에게 전달됐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김씨는 “몇몇 대학에서는 장애인 지원자를 배려하고 있지만, 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대학은 수어 통역을 제공하지 않거나 수어를 잘 모르는 사람을 배치한다”면서 “장애 학생이 모든 대학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린 뭐든 할 수 있어요, 파이팅!

유도 경기를 마친 서씨. 서씨 제공

서씨는 유도 국가대표로 데플림픽(청각장애인을 위한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는 장애인 전형이 아닌 일반 전형으로 유도학과에 입학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장애인도 듣지 못할 뿐 청인들처럼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자신과 같은 농인 학생들을 향해 “장애를 지녔다고 해서 남들이 하는 모든 일이 장애인에겐 불가능할 거란 부정적인 생각은 버리라”고 당부했다. 또 “우리도 청인과 같은 사람이고 그들이 못 하는 일을 우리가 할 수도 있다는 걸 꼭 알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국제수어 통역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는 세계 어디에서나 의사소통이 가능한 국제수어의 매력에 빠져 한국수어교육과로 학과를 옮겼다. 이씨는 수험생 후배들을 향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원하는 공부에 충실히 임하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더불어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격려를 보냈다.

“우린 특출난 거 있잖아요. 청인보다 잘 볼 수 있고 상황파악도 빠르잖아요. 눈치 보고 살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인걸요. 수능 잘 해낼 수 있어요, 파이팅!”

[농담]은 일상 속 농인들을 취재합니다. 청인사회와 같은 듯 다른 농사회의 모습, 소리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쾌하고 진실한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정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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