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로 전한 풋사랑 '청설'... 대만 로맨스 영화 리메이크 붐 왜?

나원정 2024. 10. 3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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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로맨스 한국 리메이크 잇달아
내달 6일 개봉 '청설' "순수함 끌려"
'말할 수 없는…' '그 시절, 우리가…'
원작 인지도 업고 한국식 변주
영화 '청설'(6일 개봉)은 청각장애인 수영선수 동생 가을(김민주)과 함께 살아가는 여름(노윤서)이 26살 동갑내기 용준(홍경)과 풋풋한 첫사랑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담는다. 사진 KC벤처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국내 재개봉을 거듭하며 사랑받은 대만 로맨스 영화들의 한국 리메이크판 개봉이 잇따르고 있다.
6일 개봉하는 ‘청설’(감독 조선호)은 청각장애인 가족 속에 살아온 여름(노윤서)과 도시락을 배달하는 26살 동갑 용준(홍경)의 풋사랑 이야기. 2010년 개봉해 2만 관객을 모은 뒤 2018년 재개봉한 동명 대만영화(2009)를 15년 만에 한국 무대로 리메이크했다.
2008년 15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에 대만영화 신드롬을 일으킨 판타지 음악 로맨스 ‘말할 수 없는 비밀’(2007)도 도경수‧원진아 주연의 한국판(감독 서유민)으로 만들어져 내년 개봉할 예정이다. 2012년 첫 개봉 후 3차례나 재개봉한 대만 하이틴 로맨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의 한국 리메이크판(감독 조영명)은 이달 초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 다현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대만판 감독 구파도의 자전적 소설을 토대로 고등학교 사춘기부터 15년 간 이어진 첫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국산 로맨스 실종 틈새 파고든 대만영화


그간 한국영화계에서 로맨스 영화는 범죄‧스릴러 영화 강세에 밀려 존재감이 미약했다. 그 틈새를 10~20대 순수한 사랑을 그린 대만‧일본의 청춘 로맨스가 파고들었다. 초기 붐을 일으킨 ‘말할 수 없는 비밀’, ‘나의 소녀시대’(2015), ‘장난스런 키스’(2019) 등이 충성도 높은 관객층을 확보해왔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감독 겸 주연배우 저우제룬(주걸륜), ‘나의 소녀시대’의 왕대륙 등 대만 배우들도 인기를 끌었다. 지난 3월 개봉한 대만‧일본 합작영화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대만 히트 드라마 ‘상견니’(2019~2020)의 스타 허광한 등 출연진 내한 무대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한국판의 주연 진영은 부산 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대만 원작을 5번이나 볼 만큼 빠져있던 차에 한국판 출연 제안을 받고 단숨에 수락했다고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약한영웅' 홍경 "'청설' 원작 순수함 끌려"


영화 '청설'(6일 개봉)에선 수어를 사용하는 설정상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설렘을 자아내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사진 KC벤처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8일 ‘청설’ 언론시사회에서 조선호 감독은 “일본 로맨스가 담백하다면, 대만 로맨스는 과장하거나 감정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대만 원작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감성을 한국 정서에 맞게 가져오려 했다”고 밝혔다.
한국판 ‘청설’도 청춘 연애담의 청량감을 극대화했다. 남녀 주인공 간의 대사 90%가 수어로 진행된다. 서로 눈을 바라봐야 하는 수어의 속성이 자연스레 사랑의 설렘을 빚는다. 대학 졸업 후 마땅한 꿈을 찾지 못한 20대 다운 진로 고민이 수영 선수인 동생 가을(김민주)을 위해 희생해온 여름의 자매간 소소한 갈등, 일상사 등과 어우러진다.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영웅 Class1’(2022), 영화 ‘댓글부대’에 이어 주연을 맡은 홍경은 “원작이 가진 순수함에 끌렸다”고 말했다.
무대를 한국으로 옮기며 문화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은 각색했다. 한국 정서에선 언니가 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게 더 설득력 있을 거란 판단에서 원작의 자매 관계도 뒤집었다. “인물 간의 관계성에 좀 더 집중해서 연출하며 원작과 차별화했다”는 조 감독은 “수어를 쓰기 때문에 사운드‧음악에 더욱 공을 들였다. 원작 이후 사운드 기술이 더 발전한 만큼 음성이 없는 지점의 소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중 인지도 확보·한국식 변주 이점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한국 리메이크판. 대만 작가 구파도가 자전적 첫사랑 소설을 토대로 감독 데뷔한 동명 대만 영화가 원작이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이처럼 원작 덕분에 작품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데다, 한국 정서로 변주해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도 리메이크가 활발한 요인으로 꼽힌다. ‘청설’은 일본 영화 원작의 소지섭‧손예진 주연 로맨스 ‘지금 만나러 갑니다’(2018)로 260만 흥행을 거둔 제작사 무비락이 또 다시 도전한 리메이크 작품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도 올 여름 캐나다 원작 오컬트 코미디 ‘핸섬가이즈’로 177만 관객을 동원한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8년 전 리메이크 판권을 확보해 준비해왔다.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판타지‧음악 코드가 좋았고 한국과도 맞닿은 정서가 있다고 느껴 판권을 구매했는데 이런 상황(대만 영화 리메이크 붐)이 올 줄은 몰랐다”면서 “최근 일본‧대만 로맨스 영화 반응이 좋다 보니 기획 단계에서 한국판 리메이크를 쉽게 떠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김 대표는 대만 영화 리메이크 개봉이 일종의 '트렌드' 처럼 잇따르는 데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흥행이 잘 안 될 경우 후발 개봉작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전여빈‧안효섭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너의 시간 속으로’는 대만 드라마 ‘상견니’의 한국판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싱그러운 로맨스보다 미스터리에 초점을 맞춘 각색과 빠른 전개 때문에 원작 팬들 사이에 평가가 엇갈렸다.

한국 최루성 멜로 리메이크도 현지 인기


대만 가수 겸 배우 저우제룬이 감독 데뷔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원진아(왼쪽부터), 도경수 주연의 한국 동명 리메이크로 재탄생했다.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최근 투자가 활발해진 대만 영화가 한국 영화계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다. 대만 콘텐트 회사 Grx 스튜디오는 올해 부산 영화제 기간 열린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에서 향후 5년간 5000만 달러(약 688억원) 규모의 영화‧드라마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K-콘텐트 인기 속에 한국 영화의 대만 현지 리메이크도 꾸준히 이어지는 추세다. 한국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2009)의 대만판 ‘모어 댄 블루’(2018), ‘남자가 사랑할 때’(2014)를 옮긴 ‘맨 인 러브’(2021) 등 최루성 멜로가 주로 대만 현지에서 흥행을 거뒀다. 모종혁 영화진흥위원회 중국통신원은 '중화권 한국영화 상영 동향' 리포트를 통해 "현지 관객의 관람 욕구를 파악해 한국 로맨스‧멜로 영화의 활로를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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