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박사 닮은 가수, 노래 들으면 더 놀랄걸요
[한성현 기자]
▲ 켈리 클락슨 |
ⓒ wikimedia commons |
2002년 첫 시즌을 방영한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초대 우승자로 등극한 그의 본래 음악적 성향은 알앤비와 소울 쪽이었다. 오디션 출연 전 여러 레코드사에게 "목소리가 너무 흑인답다"는 말로 빈번하게 거절당한 보컬 스타일은 방송 무대 선곡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오티스 레딩, 디온 워윅, 마빈 게이, 아레사 프랭클린, 벤 E. 킹 등 전설급 흑인 아티스트들의 곡을 주로 불렀고 이에 걸맞게 피날레에서 불러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등극, 당해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A Moment Like This'도 알앤비 감성이 짙었다.
또 하나의 탑텐 싱글 'Miss Independent'를 배출하며 데뷔 앨범 < Thankful > 활동을 준수한 성적으로 마무리한 켈리 클락슨은 그러나 본인의 이미지를 리브랜딩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소속사에 들어가 2003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던 얼터너티브 메탈 밴드 에반에센스(Evanescence)의 멤버 벤 무디를 비롯해 당시 팝 록 장르에서 활약하던 프로듀서들과 만나 곡 작업을 시작했고, 그렇게 차기작의 제작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디션 출신 꼬리표, 실력으로 떼어내다
본격적인 날개를 달아준 것은 싱글 'Breakaway'다. 사실 노래는 앨범 프로젝트와 별개로 영화 < 프린세스 다이어리 2 >의 사운드트랙으로 만들어졌지만 차트에서 좋은 반응을 받으면서 기폭제가 됐고 이에 켈리 클락슨의 팀은 이를 중심으로 앨범을 완성하기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 결과 앨범 제목 또한 이를 따라 < Breakaway >가 됐고 노래는 당당히 첫 트랙에 실렸다. 작곡에 참여한 가수 에이브릴 라빈 또한 팬들의 오랜 성원 끝에 2022년 본인 버전의 데모 버전을 공개한 것 또한 노래의 인기를 설명해 준다.
이후에도 앨범은 엄청난 히트곡을 여럿 배출했다. 앨범 발매 2주 전에 공개한 'Since U Been Gone'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고, 'Behind These Hazel Eyes'와 'Because of You'는 각각 최고 순위 6위와 7위를 기록하며 앨범에서 무려 싱글 네 곡이 싱글차트 10위 안에 진입하는 성과를 보였다. 2006년 초에 마지막 싱글로 발매한 'Walk Away' 또한 12위에 올랐으니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대단한 상업적 성과도 앨범의 뛰어난 퀄리티에서는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핵심은 당연히 뛰어난 보컬리스트로서 그의 기량이다. 어쿠스틱 기타를 곁들여 서정적으로 꿈을 노래하는 'Breakaway'와 이별 이후의 후련함을 신나게 내지르는 'Since U Been Gone', 사랑의 비참한 감정을 울부짖는 'Behind These Hazel Eyes' 등 다양한 정서가 섞여 있지만 어느 하나에서도 흐트러짐이 없다. 고딕 록처럼 으스스한 분위기로 절규하는 'Addicted'처럼 의외의 면모를 보여주는 순간도 있다.
묘하게 한기를 품은 음색에 맞춰 시원하게 내지르는 고음 위주의 트랙 외 온도 조절도 놓치지 않는다. 경쾌한 리듬에 가성이 어우러지는 선선한 'Walk Away', 피아노로 기틀을 잡아 따뜻하게 다가가는 'Where Is Your Heart' 등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켈리 클락슨은 그 어떤 막힘도 없이 자유롭다.
역량이 다시 한번 발휘되는 지점은 대미를 장식하는 전작 < Thankful > 수록곡 'Beautiful Disaster'의 라이브 버전이다. 바로 앞 트랙 'Hear Me'까지 이어졌던 격렬한 기타 사운드를 싹 걷어낸 잔잔한 편곡은, 날것으로 들려주는 목소리와 함께 그의 뛰어난 실력 속에 살아 숨 쉬는 순수함을 보여준다. 역시 여러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는 가수의 훌륭한 가창력이 중요한 법이다.
2000년대 팝 시장을 주름잡던 맥스 마틴과 닥터 루크 등 스타 프로듀서들의 참여, 그리고 한창 여성 뮤지션들 중심으로 유행하던 팝 록 사운드의 차용 등 < Breakaway >를 둘러싼 키워드는 잘 만들어진 기성품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앨범에 녹아든 내밀한 개인사는 감상 이상의 공감을 유도한다.
대표적인 것이 'Because of You'다. 유년기에 자신과 가족을 떠난 아버지, 그리고 그의 부재로 인한 흉터와 공허함을 고백하는 곡은 강한 록커 페르소나 뒤에 숨겨진 연약함을 끄집어낸다. 많이들 오해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사랑 노래로만 착각하고 넘어가면 많이 아쉬울 곡이다.
< Breakaway >로 켈리 클락슨은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독립에 성공했다. 앨범은 미국 내 600만 장, 전세계에서는 12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비평가들에게도 일제히 좋은 반응을 얻으며 2017년 < Meaning of Life >와 함께 소울 가수로 돌아오기 전까지 켈리 클락슨이 여성 팝 록 신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뒷받침이 됐다.
국내에서는 2009년 스타리그 테마음악으로 알려진 'My Life Would Suck Without You', 최근 아리아나 그란데의 커버가 화제가 됐던 'Stronger(What Doesn't Kill You)' 모두 < Breakaway >의 성공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곡일 것이다. '미국의 오은영 박사'로 불리기 전, 가수로서의 켈리 클락슨을 알기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할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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