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62만원 뜯겼다"…‘공공형’ 계절근로자도 브로커 논란
지방자치단체가 모집하는 ‘공공형 외국인 계절근로사업’에 불법 브로커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30일 제기됐다. 공공형 계절근로 사업은 소요 지자체가 외국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맺으면 농협이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해 농가에 인력을 공급하는 사업이다. 기존 계절근로제에서 불거진 브로커 문제를 해결을 위해 도입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필리핀 아마데오시(市) 출신 A씨(29)는 공공형 계절근로자로 경기 안성시에 발을 디뎠다. 안성시는 지난해 아마데오시와 계절근로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A씨는 입국 이후 안성 고삼농협에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에서 브로커 홍모씨의 계좌로 매달 62만원씩 석 달 동안 중계 수수료를 이체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두 달간 홍씨에게 송금한 A씨와 동료는 이후 입금을 거부하고 사업장에서 이탈했다. 그러자 농협에 소속된 필리핀 통역인은 페이스북에 A씨의 신상을 올리고 50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심지어 A씨 등이 마약을 투약했다는 허위 신고도 했다고 한다. 현행 법무부 외국인 계절근로자 지침은 사인(私人)이 개입해 근로자 모집‧선정‧송출 등의 중요 업무를 위임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와 A씨 등 이주노동자들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씨를 인신매매 혐의로 고소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기초지자체는 계절노동자 모집 및 선발, 입국 후 고용 과정에 대한 관리·감독을 해태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A씨는 “월급을 공제당한 많은 동료가 있다”며 “이런 중간에서 임금을 착취하는 불법 브로커는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2015년 한국 정부가 비준한 유엔(UN) 인신매매방지 의정서는 착취 목적으로 사람을 모집·은닉하는 등 행위를 인신매매로 규정한”며 “인신매매 브로커를 철저히 수사하고 이를 양산하는 계절노동자 프로그램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성시와 해당 농협은 브로커 개입을 인정하면서도 책임은 회피했다. 고삼농협 관계자는 “홍씨와 같은 브로커 없이 외국 지자체에서 인력을 모집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라며 “항공료 등 이주노동자를 데려올 때 비용이 발생하는데, 지자체가 부담하지 않는 상황에서 착취라는 비판만 하면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성시 관계자는 “아마데오시에 홍씨가 사업에 관여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며 “지자체가 인력 송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부담할 근거와 예산도 따로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공형’사업마저 불법 브로커가 활개치는 현실을 개선하려면 지자체가 송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선미 지역이민정책개발연구소 대표는 “현실적으로 브로커 없이 계절근로자 모집이 불가능한 현실이라면 결국 공공에서 비용을 들여 양성화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기복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다른 나라도 계절근로자는 기본적으로 수익자 부담원칙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지자체가 교부금을 활용해서든 송출 비용을 충당해야 불법 브로커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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