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과 ‘쿵 울리는 소리’ 사이에서…‘차별 없는 경험’ 고민하는 OTT업계

임세정 2024. 10. 3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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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저녁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코리아 사무실에선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시즌2 1화의 소리없는 상영이 이뤄졌다.

청각장애인용 자막(SDH)을 만드는 넷플릭스 글로벌라이제이션팀과 세 명의 청각장애인 모니터링 요원이 자막을 검토한 후 개선점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다.

청각장애인용 자막에 '찻잔 드는 소리'처럼 '소리'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청각장애인 모니터링 요원들은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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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홍수 속 배리어프리 필요성
청각·시각장애인용 자막·음성해설
넷플릭스, 포커스그룹 통해 지속 개선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코리아 사옥에서 김하은 넷플릭스 글로벌라이제이션팀 매니저와 모니터링 요원 정예교, 최하늘, 임서희(왼쪽부터)씨가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시즌2 청각장애인용 자막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최현규 기자

“[어두운 음악], [경훈] 희정아, [띵-피아노 건반음], 정진수!”

지난 28일 저녁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코리아 사무실에선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시즌2 1화의 소리없는 상영이 이뤄졌다. 청각장애인용 자막(SDH)을 만드는 넷플릭스 글로벌라이제이션팀과 세 명의 청각장애인 모니터링 요원이 자막을 검토한 후 개선점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다.

넷플릭스는 지난해부터 청각장애인들이 SDH 자막의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포커스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 자막이 화자에 대한 정보 없이 대사만 전달하는 반면 SDH 자막에는 대사의 내용과 소리 묘사, 말하는 사람 등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흑백요리사’, ‘지옥’ 시즌2 등의 자막이 이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소리가 주는 효과가 큰 장르인 SF물 ‘지옥’을 청각장애인들이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의가 시작됐다. 화면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을 때 과거엔 ‘쿵 울리는 소리’라고 자막을 썼다면 최근에는 ‘쿵!’이라고 표현하는 식으로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김하은 글로벌라이제이션팀 매니저는 30일 “글로 설명을 풀어쓰는 대신 의성어를 많이 활용하려 한다. 한국어는 의성어가 발달해 유리한 지점이 있다”며 “‘쿵’이라는 글자와 느낌표 하나만으로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다면 문자는 최소화하면서 소리를 시각화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각장애인은 소리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청각장애인용 자막에 ‘찻잔 드는 소리’처럼 ‘소리’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청각장애인 모니터링 요원들은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넷플릭스 글로벌라이제이션팀 매니저가 모니터링 요원들과 함께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시즌2 청각장애인용 자막에 대해 토의하는 모습. 최현규 기자

배리어프리 벤처기업 데프누리를 운영하는 임서희씨는 “‘소리’라는 표현 자체가 불편하기도 하지만 ‘찌익’(지퍼 열리는 소리), ‘들들’(바퀴 굴러가는 소리)처럼 소리를 묘사하는 표현만 자막에 나오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면서 “어린아이에게 보여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자막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연극배우로 활동하는 정예교씨는 “청각장애인들은 다양한 단어보다는 익숙한 단어를 주로 쓰는 경향이 있다”며 “실제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인지 미리 조사한다면 SDH 자막을 만드는 작업이 전반적으로 수월해질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김 매니저는 “SDH 자막을 만들 때 제1원칙은 ‘청인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인데, 경험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면서 “청각장애인용 자막에 무조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으려 한다면 그것이 옳은 방향성인지, 화면으로 충분히 분위기가 전달된다면 자막으로 꼭 설명해야하는지 등 많은 고민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불편함 없이 콘텐츠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계는 인식을 같이 한다. 티빙, 쿠팡플레이,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등 OTT 플랫폼이 제공하는 오리지널 작품에는 SDH 자막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음성해설이 대부분 적용돼 있다. 저작권을 사오는 작품에도 이를 꾸준히 확대 적용하고 자막이 적용되는 언어도 다양화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배리어프리 시장은 영어권에 비해 덜 발달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OTT 라이브러리 강화 지원사업,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방송 제작지원사업을 통해 업계를 돕기 시작했지만 갈 길이 멀다.

업계 한 관계자는 “SDH 자막 제작에는 한 편당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어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지원 규모를 점차 늘린다면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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