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에서 탈시설은 '비싼 정책'이 되었는가
[전근배]
| 기자말 |
| 최근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이하 서울시탈시설지원조례)가 폐지되는 등 장애인 탈시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탈시설이 장애인의 권리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공연히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하는 등, 비용 문제를 이유로 시설 수용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의 권리를 숫자나 비용으로만 보는 잘못된 접근입니다. 탈시설은 보호가 아닌 존엄과 권리의 문제로 다뤄져야 합니다.탈시설을 둘러싸고, 특정 탈시설 반대 세력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탈시설의 볼륨을 더욱 높이고자 본 기획 연재를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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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21년 12월부터 혜화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선전전을 매일 진행하고 있다. 2022년에는 혜화역 승강장에서 기획재정부에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선전전을 진행했다. |
| ⓒ 비마이너 |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비용'은 시민이 의지를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치는 무한대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정의나 인권에 관련된 중요한 주제들은 대부분 인위적 해결을 위한 비용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얼마인가'에 따라 계산이 나온다면 거래되고, 그렇지 않다면 거래되지 않습니다. 계산이 복잡해 보인다면 거래는 늦춰지거나 없던 일이 됩니다.
이 글은 탈시설 초창기에 들어서고 있는 우리나라가 탈시설의 효과, 그중에서도 경제적 측면을 고려할 때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질문은 "왜 한국에서 탈시설 정책은 '비싼 정책'으로 취급되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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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8월 28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주최한 '유엔탈시설가이드라인 2주년 토론회'에서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한국의 탈시설 정책을 비판하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 ⓒ 전장연 |
하지만 서구의 탈시설이라는 아이디어가 정책으로서 채택되어 확산된 시기는 1970년대에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세대 탈시설을 움직인 왼쪽 바퀴는 인권운동이었습니다만, 오른쪽 바퀴는 국가의 사회보장 비용 절감 의도와 맞물린 민간시설로의 책임 전가(국영 시설 폐쇄 및 민영 소규모 시설로의 분산 재배치), 공동체의 사회 경영 능력이 아닌 개인의 자기 경영 능력의 강조(자립과 선택권)라는 신자유주의적 전략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왜 탈시설이 '비싼 정책'으로 생각될까요?
애초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특히 종교)에 의존하여 수용시설 형태를 기본으로 사회보장 체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직접 지원은 민간에서 하고 국가는 그를 지원하는 소극적 역할만을 맡았습니다. 국영 대형시설에서 민영 소규모 시설로 재배치하는 방식의 탈시설은 우리나라에서 비용 절감 효과를 갖기 어려우며, 시설이 아닌 다른 경로를 만들어 지역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더욱 큰 부담이 되는 조건인 것이지요. 따라서 시설과 수용자의 수를 더 늘려 미래의 지역사회 서비스 수요를 억제하는 방식이나, 기존 시설의 기능을 확대하여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함으로써 현재의 서비스 수요에 대응하는 방식이 실질 비용을 절감하는 데 유리합니다. 그럴수록 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는 환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높아질 것입니다.
민영 시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시설이 저항한다면 정부가 정책의 강한 주도권을 갖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 정부는 근본적인 개선이 아닌 미봉책(기존 시설의 유지와 개선)을 선택하기 쉽습니다. 절충의 이유로 여러 근거들이 제시될 수 있지만 가장 행정적으로 간편한 것은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야 한다거나 예산 부족일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개혁이 필요한 부분을 지연하는 정치적 결정은 시민들에게 장기적으로 추가 비용을 부담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건물을 다 짓고 난 후 뒤늦게 엘리베이터 공사를 다시 하면서 시민들에게 불편과 부담을 초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사회정화'나 '명랑사회 구현' 또는 '가족 돌봄부담 경감' 등을 이유로 시설 수용 일변도의 정책을 오랜 기간 취해왔습니다. '탈시설'이나 '자립생활', '지역사회 서비스'라는 것에 대한 인식과 제도의 수준이 모두 낮습니다. 탈시설에 관한 실천적·규범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경험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당사자도, 가족도, 시민들도 상상하기 쉽지 않습니다. 체감이 적으니 걱정은 많아집니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은 비용의 적절성, 비용을 상쇄할 만한 탈시설의 또 다른 가치에 대해 비교 검토할 만한 준거점을 우리 사회가 마땅히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탈시설 정책을 말할 때면 익숙하고 가시적으로 도드라지는 당장의 비용에만 필요 이상으로 집중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지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다양한 실천의 사례와 규범이 국내에서는 제각기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것도 이 탓이 큽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시설에서 살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거나 "탈시설은 시설 폐쇄가 아니라 시설 개선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를 찾는 부적절한 관행에는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어 보입니다. 2010년대에 공익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요구가 시설 법인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규탄받은 것과 2020년대에 탈시설 자립생활 요구가 '전체주의적 정책'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는 것 사이에도 역사성이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중증장애인의 탈시설에 필수적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두고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간다"고 말했던 문맥에는 차라리 '시설이 진짜 필요했던 솔직한 이유'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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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2월 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단독 공개 대담이 진행됐다. 대담에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참여했다. |
| ⓒ 비마이너 유튜브 캡처 |
그럼에도 대다수 연구자들은 탈시설의 근거를 비용 절감 효과에서 찾는 것을 경계합니다. 탈시설이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지만, 탈시설이 장애인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증명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국가, 장애 유형, 장애 정도 등과 관계없이 대다수 연구는 탈시설 이후 장애인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보고합니다. 시설에서보다 선택의 기회가 많아지고,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이 늘어나며, 가족이나 친구와의 접촉, 지역 사회에의 참여, 의료진과의 만남 등이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가족 역시 초기에는 탈시설을 걱정하고 반대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탈시설을 선호하며 긍정적으로 변합니다. 이런 변화는 사회적 자원이 투자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변화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것은 누구나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추측이 가능한 결과가 아닐까요? 탈시설 정책이 장애인과 가족에게 가져다주는 편익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탈시설 정책이 '비싼 정책'으로 여겨지는 두 번째 이유는 조금 더 노골적인 데에 있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어, "장애인과 가족의 삶의 질 향상이 이 사회에 무슨 이득이 되는가?"와 같은 것이죠.
2023년 서울시는 탈시설 비용 추계를 발표하며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면 1인당 연간 6천 2백만 원이 드는 반면, 지역 사회에서 살게 할 경우 연간 1억 원의 예산이 든다고 예측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의 장애인 단체가 같은 해 개최한 예산 분석 토론회에서는 현재 시설에 거주하는 2만 4,174명의 장애인을 지역 사회로 전환할 경우 연간 3,746억 원(1인당 평균 1천 6백만 원)의 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관과 민의 발표 모두 시설 유지보다 탈시설 정책이 비싸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를 분석할 때에 단순히 비용만을 기준으로 공공정책을 수립하지 않습니다. 병원이나 학교, 도로나 수도를 설치하는 것은 기업식 비용 논리로는 적절하지 않은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장 드는 비용만이 아니라 이 정책으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더 나아질 것인지 편익을 함께 계산합니다. 그럼에도 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비용'으로만 다루어질 뿐 그 '효과'인 편익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습니다. '사회통합'과 같이 듣기 좋은 말 정도일 뿐 정책이 가져오는 편익이나 추가적인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정책은 그 이름이 '시설'이든 '탈시설'이든 그저 비용으로서 당장 부담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만 따지게 되는 게 문화가 된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시설에서 무기력하게 생활하다 탈시설 후 직업을 갖고 경제 활동을 하는 것, 시설에서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정신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시설로 보내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돌봄 감옥을 견디던 가족이 자립 생활이라는 새로운 선택지 속에서 다시 자신의 사회 활동을 시작하는 것, 시설 입소를 선택한 이후 죄책감과 우울을 겪던 가족이 탈시설 이후 원래의 일상과 관계로 돌아가는 것,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새로운 경제 생태계가 영향받는 것은 얼마의 가치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휠체어 사용자가 지하철과 버스를 타기 시작하면서 교통환경이 달라지고 전체 시민의 교통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시설 수용이 아닌 지역사회 기반의 서비스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일은 장애인을 비롯한 아동, 노인, 이주민, 1인 가구에 대한 정책 변화에 어떤 경제적 효과를 불러올까요? 어쩌면 '비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행정학자 최태현의 말처럼 탈시설 정책은 비용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당사자와 가족, 지역사회와 국가의 여러 측면에서 정책이 불러올 긍정적인 외부 효과를 발견하고 신중하게 가치화하는 노력이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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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9월 1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김진수 공동대표 49재 추모제 및 탈시설지원법 입법촉구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
| ⓒ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
설령, 사회권적 성격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남는 자원에 의해 '점진적으로' 이행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경제적 가치의 총량인 GDP가 꾸준히 증가하여 왔지만 시설과 수용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공동체의 가치가 커진다고 하여 그것이 탈시설로 이어진다는 기대는 그다지 타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 유엔 사회권위원회에 의하면 '점진적(progressively)'이라는 의미는 단기간 내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는 개념이지 의무의 면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합리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권리보장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정부에 최대한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행동의 의무를 부과하는 개념입니다. 인권학자 조효제가 'progressively'를 '점진적으로'가 아닌 '전향적·지속적으로'로 해석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애인권리협약에서 말하는 탈시설에 관한 정부의 자원 투여 의무는 단순한 비용 논리에 기초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시설 정책을 유지함으로써 장애인과 가족들에게 마땅히 돌아갔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몫을 마땅히 지불하라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를 위해 현재 시설에 투여되고 있는 총 자원과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확충에 필요한 총 자원을 파악하여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가질 것, 예산과 기간을 명확히 한 탈시설 계획을 수립하여 책임 있게 시행할 것,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시설 정책으로 인해 입어야 했던 피해에 대해서 회복할 수 있게 지원하고 보상할 것과 같은 주문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비용이 의지에 영향을 준다면, 의지도 비용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탈시설의 경제적 효과를 정말 진지하게 따지기 위해서라도, 비용에 관한 논의를 우회하지 않되, 그것과 적정한 거리를 두면서, 당사자의 눈으로 탈시설의 비용과 편익, 사회적 가치를 따져보는 노력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우리에게 탈시설의 경제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대구대학교 장애학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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