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 일절 모른채 전선 투입"…북한군 대규모 전사 우려

이유정, 정영교 2024. 10. 3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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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 연해주 지역에 파병된 것으로 보이는 북한군 추정 동영상이 또 공개됐다. 러시아 독립 언론기관이라고 주장하는 '아스트라'는 지난 22일(현지시간) 텔레그램 채널에 북한군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건물 외부에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해 게시했다. 아스트라는 해당 영상에 대해 ″블라디보스토크 '세르기예프스키에 위치한 러시아 지상군 제127자동차소총사단 예하 44980부대 기지에 북한군이 도착한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한·미 정보 당국이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배치됐다고 확인한 가운데 북한군 장병들이 러시아 측과 기본적인 언어 소통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전선에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정보원은 북·러 군 당국이 전장에서의 소통을 위해 ‘언어 속성 과외’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북한 장병들은 기초 군사 용어 소화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들이 러시아 무기를 들고 러시아 지휘관의 지시를 받아 최전선에 투입될 경우 북한군이 대량으로 사망하거나 다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할 조짐이 보인다.

30일 정부 관계자와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우크라이나 전장에 배치된 북한 장병 대다수는 초보적인 명령어 외에 러시아어 교육을 거의 받지 못 한 상태로 전선에 투입되고 있다.

현재 전장에 투입되는 북한군 병사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북한 정규 교육 과정에서 '노어(러시아어)'를 거의 배우지 않은 세대란 뜻이다. 북한에서 러시아어는 한 때 제1외국어로 각광 받았지만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수업이 거의 사라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소학교와 초급·고급 중학교(한국의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정규 외국어 교과목은 영어가 유일하다. 통일부 관계자는 "소학교는 4학년부터 외국어 과목으로 영어를 가르치지만, 러시아어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고위 탈북자는 중앙일보에 “기존에는 중·고등학교에서 러시아어 교육을 실시했는데 동구권이 붕괴하고 고난의 행군이 이어지면서 많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이미 평양외국어학원(외국어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북한의 중등교육 기관), 평양외국어대학에서 노어 전공자가 기존 30~40명에서 12~13명 규모로 줄어들었다”고도 했다.

1986년생인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도 “내가 중학교를 다녔던 90년대 중후반부터 북한의 외국어 교육은 이미 영어가 대세였다”면서 “노어를 배우던 인원은 10%도 안 됐던 걸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러시아 군 당국이 러시아어를 알아 듣는 북한군은 물론 통역 자원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국정원은 앞서 29일 국회 정보위원회 브리핑에서 “러시아군이 한국어 통역 자원을 대규모로 선발하는 정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측은 반대로 북한군에 러시아어로 된 군사 용어 100여개를 교육하고 있지만, 북한군이 이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국정원은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군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러시아군과 함께 전장에 투입될 것으로 정보 당국은 내다보고 있다. 국방정보본부는 30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러시아와 혼합된 편제 가능성이 큰데, 언어와 지역 문제로 북한군 독자적으로는 전투 수행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고 여야 간사가 전했다.

이와 관련,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9일 러시아 군인들이 북한군과 소통하기 위해 한국어를 익히는 영상과 소책자를 입수해 보도했다. RFA가 러시아군의 비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입수한 것이라고 밝힌 영상에선 한 러시아 병사가 ‘안녕하세요’, ‘어디에서 왔어요’ 등의 한국어를 공부하며 불만을 표출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와 더불어 소셜미디어(SNS)인 X(옛 트위터)에는 러시아 병사가 한국어로 '엎드려' '공격해' '무기를 내려놔' '계급과 직책은 뭐야' 등이 적힌 책자를 공부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런 가운데 북한군이 포함된 러시아 부대가 우크라이나와의 첫 교전을 벌여 북한군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선을 지원하는 리투아니아의 비영리단체(NGO) 블루/옐로우의 조나스 오만 대표는 28일(현지시간)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25일 이미 쿠르쿠스주에서 우크라이나 부대와 북한군이 포함된 러시아 부대 간 첫 교전이 벌어졌다”면서 “1명을 제외하고 한국인(북한인)을 포함한 모두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다만 생존한 1명은 부랴크족 신원 서류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만 대표는 이어 “우크라이나 소식통으로부터 러시아 지휘관들은 아무도 한국어를 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북한군들은 러시아인들에게 큰 골칫거리”라고 전했다.

오만 대표는 또 “우리는 북한군들이 항복하면 가족들이 고통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쿠르스크는 아마도 실험용이고, 그들은 총알받이로 쓰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여기서 성과가 있다면 북한군은 중대나 대대 수준에서 병행하거나 독자적인 부대로 러시아군과 통합될 것”이라고도 관측했다.

다만 이에 대해 국방정보본부는 북한군 전사자 발생 주장 등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보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여야 간사가 전했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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