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항일운동이 시작된 나주역
[정만진 기자]
▲ 박준채, 나주역, 박기옥 |
ⓒ 국가보훈부 |
예를 들면 '순번: 1, 한글 성명: 가네코 후미코, 한자 성명: 金子文子, 생몰년: 1903-1926, 운동 계열: 독립운동 지원, 포상 연도: 2018, 포상 훈격: 애국장, 생존 여부: 사망, 본적: 외국 일본' 식이다.
다양하게 분류되어 있는 독립운동 계열
중복은 생략하고 운동 계열을 순번에 따라 살펴보면 (1)가네코 후미코- 독립운동 지원, (2)가재연- 학생운동, (3)가재창- 국내 항일, (5)감익룡- 계몽 운동, (7)강경근- 만주 방면, (8)강경선- 중국 방면, (9)강경숙- 미주 방면, (13)강계대- 3.1운동, (16)강관수- 의병, (32)강금종- 일본 방면, (39)강기준- 광복군, (94)강면하- 임시정부, (97)강명세- 노령 방면, (164)강상원- 의멸 투쟁, (172)강석기- 문화운동··· 식이다.
학생운동 계열을 상징하는 의거는 "3·1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항일운동(두산백과)"인 광주학생항일운동이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시발점인 1927년 10월 30일 나주역 사건을 돌이켜본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뒷받침이 된 신간회
1926년 순종 사망을 계기로 6·10만세운동이 일어났다. 6·10만세운동을 계기로 분열적 종파주의를 극복하고 민족 역량을 통합하자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제고된다. 그 결과 1927년 2월 민족단일당인 신간회가 출범한다. 1929년 초 신간회는 전국에 144개 지회와 3만9천여 회원을 조직했다.
광주 지역에 신간회가 조직된 것은 1927년 10월이었다. 한 달 뒤인 11월에는 광주청년연맹이 창립했다. 신간회 광주지회와 광주청년동맹 임원들은 성진회, 독서회 등 비밀학생조직의 배후 인물로 활동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기운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일본인 남학생들의 나주 한국인 여학생 희롱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첫 발화가 되는 사건이 나주역에서 일어났다. 나주역은 일본인 대지주 자녀들과, 차별과 멸시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자녀들이 날마다 마주치는 지점이었다. 나주 일원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국적이 어디든 이곳에서 광주까지 기차로 통학했다. 자연히 평상시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침내 1929년 10월 30일 한국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 사이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광주발 통학열차에서 내린 광주중학 3학년 후쿠다 슈조[福田修三] 등 일본인 중학생들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이광춘·박기옥 등 한국인 여학생들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면서 희롱했다.
일본인의 한국인 멸시 정도가 드러난 사건
일본인들이 평소 얼마나 멸시하고 차별하는 인식으로 한국인을 대해 왔는지 잘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역에서 마주친 여학생들이 일본인이었으면 결코 후쿠다 슈조 등이 그와 같은 행동을 저지를 리 없기 때문이다.
이때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가 나주역에 있었다. 박준채 역시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 학생으로서 지금 귀가 중이었다. 일본인의 한국인 멸시 행동을 눈앞에서, 그것도 자신의 사촌누나에게 가해지는 성희롱 장면을 보고 박준채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박준채가 달려가 후쿠다 슈조를 저지하면서 사과를 요구했다. 우월의식으로 가득찬 일본인 학생이 한국인 남학생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두 사람이 멱살잡이에 들어가자 광주고보 한국인 학생 30여 명과 광주중학 일본인 학생 5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일제 경찰 편파 폭행, 학생 시위에 불당겨
드디어 집단으로 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이 출동해 한국인 학생들을 무차별 폭행했다. 일제 경찰의 일방 편파는 한국인 학생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신간회 광주지회와 광주청년동맹은 학생들에게 "우리의 투쟁 대상은 광주 중학생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다. 광주 중학생에 대한 적개심과 투쟁을 일제에 대한 증오와 독립투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식을 고취했다.
11월 3일, 일본인들에게 이날은 명치'천황'의 탄생을 경축하는 명치절(明治節)이었다. 일제의 기념행사 대거 강제 동원은 나주역에서 분기를 쌓은 한국 학생들에게 도리어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로써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본격 시작되었다. (박준채, 박기옥, 이광춘 등은 광주학생항일운동 이후 모두 학교에서 퇴학되고, 일제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덧붙이는 글 | 국가 인정 독립유공자가 1만8천여 분 계시는데,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소개하려면 1500년 이상 걸립니다. 한 달에 세 분씩 소개해도 500년 이상 걸립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날, 의거일 등을 중심으로 '오늘의 독립운동가'를 써서 지사님들을 부족하나마 현창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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