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수목원에서 발견한 자연의 잠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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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상 기자]
가끔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잔디밭과 꽃밭, 텃밭을 매일 오가다 보면 마당이 우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맴돌다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호기심도 줄고 변화에 둔감해진다. 그럴 땐 더 넓은 우물을 찾아간다. 아는 식물을 만나면 친한 척하기도 하고, 새롭고 낯선 식물에 눈이 커지기도 한다.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는지 바라보는 것은 해석이 필요 없는 공부다.
가까운 곳에 무궁화수목원이 있다. 산을 깎아 만든 곳이다. 수목원을 만들기 위해 수목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은 기괴한 아이러니다. 관람과 관리를 위한 건축물, 널따란 시멘트 탐방로가 얼마나 편리한지. 심지어 시멘트 기둥 위에 스카이워크 전망대까지 놓였다. 산림청 공모사업으로 국비와 지방비 108억 원이 들어갔다. 대다수 국공립수목원이 이처럼 '개발사업'으로 만들어진다. 사업은 자연을 갈아엎고 시작한다.
지난 9월엔 멀리 순천만 국가정원에 갔다. 조성된 지 불과 10년,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애초에 나무라곤 없던 28만 평의 논밭에 터를 닦아 수목을 기증받거나 새로 심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농지에 정원을 만든 것이다.
내가 찾았을 땐 꽤 많은 종사자들이 국화와 포인세티아 화분을 옮겨 심고 있었다. 철 지난 꽃들을 제거하고 계절 꽃을 심는 것이다. 얼핏 보아도 화훼농가를 살리고, 일자리도 창출하며, 관광 수익까지 올리는 매우 성공적인 사업이다. 게다가 이 정원이 순천만을 보전하는 개발저지선이 된다니 생태도시로서의 명분도 확고하다.
▲ 순천만 국가정원 봉화 언덕, 정원 워케이션, 한국 정원 |
ⓒ 김은상 |
1970년부터 천리포수목원 조성을 시작한 故민병갈(Carl Ferris Miller) 원장은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식물학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 수준의 경지에 올랐고, 1989년 영국 왕립원예학회로부터 국제원예계에서 가장 큰 명예로 여기는 베치 메달(Veitch Medal)을 받았다. 2000년에는 국제수목학회에서 세계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을 받아 국제적 수목원으로 키워냈다.
사실 내 관심은 '천리포수목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라는 글귀였다. 오래전 기억으론 바다를 끼고 있다는 것 외에 다른 수목원과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는 미개방 지역, 이른바 비밀정원을 걸으며 가드너의 설명을 듣는 '아침 산책'으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 천리포수목원 적피배롱나무, 목련나무 |
ⓒ 김은상 |
바닷가 논밭과 민둥산 불모지에 조성된 수십만 평의 정원이란 점에서 순천만국가정원과 천리포수목원의 출발은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결과는 극명하게 다르다. 전자는 인위적 꾸밈이 많아 손이 많이 가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 반면 천리포수목원 비공개지역 식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숲속엔 강한 식물들이 자리를 잡아서 잡초가 자라지 못해 사람의 손길이 그리 필요치 않다.
▲ 천리포수목원 호랑가시나무, 비개방 수목원 입구, 무궁화꽃 |
ⓒ 김은상 |
가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공들여 가꾸어야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꽃과 열매를 볼 수 있다. 그 시간과 정성을 다른 풀과 나무에 들이면 더 풍성하게 가꿀 수 있다. 키우기 쉽지 않은 꽃을 피워낸 기쁨과 가치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어쨌든 마당은 사람의 손길을 전제로 한다. 어떤 책에선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하였으나 숲이 아닌 정원은 태생이 인위적이다. 그렇다 해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이 깃든 곳이니 내 의도대로 되리란 기대도 터무니없다. 그러므로 완성된 정원이란 없다.
우물 밖을 구경하고 나니 뜰을 가꾸는 지향점이 조금은 선명해진다. 나만을 위한 뜰이 아니라는 것. 살아있는 것들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 서로에게 힘든 존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클 수 있도록 돕되 자연의 잠재력을 믿고, 학교라는 오래된 제도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경계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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