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겨울을 지나며 들었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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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혁 기자]
'프리랜서'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라는 꿈일 이 단어가 나의 단어이자 나의 인생이 된 후로, 나는 나의 하루가 만족스러웠는지 아니면 그렇지 못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신경을 생존에 곤두세워야만 했고 업무와 여가의 경계를 지어주던 12시나 6시 따위의 개념들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깨끗하게 비워진 24시간에 조바심이 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날을 거듭할수록 게을러져 갔고 이 게으름은 쉽게 잡히지도 통제되지도 않았다.
이따금씩 들어오는 일들은 무거운 마음을 순간 가뿐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게으름이라기보다는 무기력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사방이 탁 트인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내가 젓는 노질 따위가 어떤 의미를 갖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갔고, 소속된 곳이 없다 보니 새로운 일이 발생할 만한 상호작용 또한 없었다.
무기력이 게으름을 만들고, 게으름이 다시 무기력을... 그리고 무기력은 마침내 우울증까지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처지를 짐작했는지 친구 하나가 사람 몇 몇을 소개해주었다.
"이분들로부터 일이 좀 생길 수도 있을 거야."
▲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온전히 스스로인 것은 없다는 걸 이제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
ⓒ krutota on Unsplash |
어느새 통장은 0으로 수렴해갔고 사정 모르는 할부금과 세금은 꼬박꼬박 협박성 문자를 보내왔다. 아내는 간단한 군것질조차 삼가기 시작했고, 외출을 할 때면 그나마도 유일한, 낡고 무거우면서도 심지어 따뜻하지도 않은 패딩을 꾸역꾸역 입었다. 나는 결국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껏 삐딱한 마음과 상할대로 상한 자존심에도 소개 받은 사람들을 찾아 나섰고, 감사하게도 그들은 어떻게든 나를 돕고자 힘을 써주었다. 없는 일도 만들어주었고, 식사로, 선물로, 조언으로 나를 격려했다.
한 달, 또 한 달... 그렇게 한 달을 일하면 또 딱 한 달치만큼의 생활비가 마련되었다.
그렇게 근근이 배를 채우고, 내야 할 돈을 내면서 나는 이 기본적인 것들을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삶의 정수요, 실력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삶이 너무 추워 계절의 변화를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친구의 관심과 사랑이 이번 겨울도 마침내 끝자락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점심시간 외출을 했더니 꽃이 피어 있었다.
언뜻 꽃이 그 나무의 소유 같아 보여도 실은 해의 것, 토양의 것, 바람과 비의 것이기도 하다. 심어준 이의 수고에도 지분이 있을 것이며, 계절을 따라 피고 지라는 DNA를 새긴 신에게도 꽤 상당한 지분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모두 다 그렇게, 나누어 진 빚이 있어'라고 노래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온전히 스스로인 것은 없다는 걸 이제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나로부터 움튼 어떤 결실도 홀로 피워낸 것이 아니라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흙이 되고, 빛이 되고, 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양분으로 다시금 돌아온다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온전히 스스로인 것은 없다는 걸 이제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제 나는 어느 정도 자릴 잡은 프리랜서가 되어있다. 한결 여유로운 마음이 문득 행복하다 느껴지는 때면, 차갑고 추웠던 그때가 예외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제는 끝이겠구나 싶었던 그 수렁 앞에서 다정하게 놓아주었던 그 다리로 인해 겨울을 건너 봄을 맞을 수 있었다.
날이 추워지고 있다. 그리고 계절의 추위를 체감하지 못할 만큼 삶이 추운 이들이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겨울, 사랑의 빚 나누어 질 이들을 한 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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