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방러, 당겨진 북한군 배치…푸틴이 줄 선물도 빨라진다
우크라이나전 파병을 고리로 한 북한과 러시아 간 ‘거래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북한군 1만명이 벌써 러시아에 당도했고, 실전 투입 시기도 당겨지는 분위기다. 미 대선 등을 의식, 최대한 빨리 전세를 바꾸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조급함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반대급부 제공도 곧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의 갑작스러운 방러도 이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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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실전 투입, 러 반대급부 바로 제공할 듯
미 국방부는 28일(현지시간) 북한이 러시아 동부에 병력 1만명을 파병했다고 밝혔다. 사브리나 싱 국방부 부대변인은 이날 “북한군 일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쿠르스크 국경 지역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앞서 한·미는 지난 24일 북한군 3000여명이 러시아에 있다고 확인했다. 국정원은 “연말까지 1만여명이 파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미 측이 불과 닷새 만에 벌써 1만여명이 현지로 이동을 완료했다는 쪽으로 정보 분석 결과를 갱신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28일 우르슬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통화에서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실제 전선 투입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러·북 군사협력의 진전 여하에 따라 단계별 조치를 적극 취해 나갈 것”이라면서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군이 실제 전투에 투입되는 게 우리 입장에서는 티핑 포인트(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지점)”라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의 반대급부 제공이 곧 뒤따른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북한군을 실제 활용하는 시점이 빨라지면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시점도 빨라지는 셈이다.
정보 소식통은 “지난해부터 북·러 간 교류·협력의 추이를 보면 한쪽이 뭘 제공하면, 다른 한쪽이 큰 시차 없이 대가나 보상을 제공하곤 했다”며 “1대1 거래가 곧바로 이뤄지는, 어음이나 수표를 끊어주는 게 아니라 바로바로 현찰박치기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모든 대응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인데, 북한군의 실전 투입 및 러시아의 반대급부 제공 사실이 확인되면 이 중 어느 선택지를 실제 행동에 옮길지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단계별 조치’가 일부 이뤄지는 기점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다음달 4일 방한하는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전략대화를 개최한다. 북한군 파병 문제도 주의제가 될 전망인데, 양 측이 ‘안보·국방 파트너십’을 체결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어게인’ 가능성, 고지 선점 나선 푸틴
러시아가 북한군 투입을 서두르는 것은 다음달 5일 치러지는 미 대선 결과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빙 판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막판 경합주에서 다소 우위를 보이는 추세인데, 트럼프 재선시 어떤 식으로든 우크라이나전 휴전이나 종전 논의가 빨라질 수 있다. 푸틴으로서는 관련 논의가 이뤄지기 전 최대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북한군이 주로 투입되고 있는 지역이 러시아 서남부 쿠르스크주라는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접경지인 쿠르스크는 우크라이나군이 진격해 일부 점령 중인 러시아 영토다. 휴전이나 종전 시점에도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격퇴하지 못한다면 러시아로서는 국경선을 다시 긋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수도 있다.
푸틴이 쿠르스크 탈환전에 사활을 걸면서 하루에도 수만명씩 사상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북한군을 공급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규모도 커지는 이유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트럼프 당선 시 종전이 임박할 수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로 들어온 영역만큼은 밀리지 않아야 한다고 푸틴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래서 쿠르스크에 북한군을 쏟아부으며 속도전을 펼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대가로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핵추진 잠수함 관련 기술 등을 받을 수도 있고, 러시아가 앞장서서 민생 분야 대북 제재 무력화에 나서줄 수도 있다”면서다.
방러 최선희, 김정은 특명 받았나
실제 북·러 간 고위급 교류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노동신문은 29일 “외무상 최선희 동지와 일행이 러시아 공식 방문을 위해 28일 평양을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최선희는 지난달 여성 관련 국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를 찾았는데, 불과 한달여만에 다시 방러한 것이다. 김정은의 ‘특명’이 있을 수 있다는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특히 북한군 투입이 한창 이뤄지고 있는 중에 외교 수장이 직접 움직인 건 파병의 대가와 관련한 협상이 목적일 수 있다. 전례로 미뤄 최선희는 푸틴을 예방하고 직접 대화를 나눌 가능성이 크다. 내년 김정은의 러시아 답방도 이번에 논의될 수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파병과 관련한 세부 대응을 조율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다만 지난 1월 최선희 방러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군사분야 협의가 이뤄지는 게 있더라도 양측 모두 공개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선희의 방러를 계기로 ‘북·러 간 포괄적·전략적 동반자에 관한 조약’ 비준 작업이 마무리될 수도 있다. 해당 조약은 양 측이 비준서를 교환하면 발효한다. 러시아는 이미 비준 절차를 마무리했고, 북한의 비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북한 법제상 국무위원장인 김정은이 주요 조약에 대한 비준 권한을 보유하고 있어 언제든 비준이 가능한 상황이다.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은 29일(현지시간) 최선희가 전날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고, 30일에 모스크바를 방문할 것이라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파병 북한군이 분산돼 훈련받고 있는 곳이다. 최선희가 파병 장병을 격려하는 한편 연해주 정부와 불법 노동자 파견, 제재상 수출·입 금지 품목 거래 등을 논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4000여명의 북한 노동자가 러시아로 파견됐으며, 지난 6월 양국 간 조약 체결된 이후 광물을 비롯한 금수품 관련 이면 합의도 이뤄졌다고 보고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 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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