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칼럼] 세수 펑크 속 혈세가 남아도는 기묘한 두 풍경
펑크난 세수 메우려는 정부와
남의 나랏일인 듯 국민 혈세
물 쓰듯 탕진하는 지자체 모습
포퓰리즘 정치와 어우러진
불용액 소진 독려 정책이 문제
올바른 분배 위한 시스템 절실
#1 지난주 단풍을 보기 위해 설악산에 갔다가 허탕을 쳤다. 9월에 기승을 부린 가을 폭염 영향이었는지 설악은 아직 녹색 기운을 고집하고 있었다. 허탈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근 지방자치단체에서 한 달간 개최했던 축제 현장에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혈세가 줄줄 새고 있었다. 행사에 동원된 각종 조형물이나 화분, 정원석, 디딤돌, 잔디, 자갈, 스프링클러 등 돈 될 만한 자재들을 마을 사람들이 승용차는 물론 트럭까지 동원해 앞다퉈 실어 날랐다. 작가들에게 제법 비용을 치렀을 만한 설치 작품들은 재활용 쓰레기 취급조차 받지 못한 채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시멘트 부대에 자갈을 담고 있던 한 주민은 “해당 공무원에게 예산 낭비 같은데 가져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축제의 취지가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이므로 상관없다는 말만 되돌아 왔다”고 말했다. 백번 양보해 행사에 동원된 자재가 주민들에게 돌아가므로 자원의 재분배라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예산을 물 쓰듯 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2 기획재정부는 지난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예상보다 30조원 가까이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한 ‘재정 대응 방안’을 보고했다. 지난해 60조원의 결손에 이어 2년 연속 세수 펑크가 나자 16조원 가량의 기금을 끌어다 메우겠다고 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환율 불안 때 방어용으로 사용하는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서 4조~6조원을 동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무려 19조원을 끌어다 쓴 전례 때문에 비판이 많아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외평기금은 유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이날 대응 방안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외평기금을 다시 동원할 수밖에 없는 건 지방 재원 축소를 최대한 억제해 보려는 고육책이라는 설명이었다.
국제 환율 투기세력이 호시탐탐 노리는 외환시장 방어보다 지방 재정 확보가 훨씬 중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기재부 담당과장은 “국회에서 지방재원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컸고 이를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재원이 필요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세수가 감소하면 자동으로 일정비율 감액되는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에도 기술적 방식까지 동원해 완충장치를 마련했다. 29조6000억원이 감소하는 세수 추계대로라면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도 9조7000억원이 자동으로 줄어야 하지만 6조5000억원만 집행을 보류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차액 3조2000억원을 더 지급하는 효과를 도출한 것인데 이를 외평기금으로 땜질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국채 발행 대신 허리띠를 졸라맨다며 외평기금을 동원해 지자체 예산만큼은 최대한 확보하겠다는데, 정작 지자체는 세수 펑크를 남의 나랏일인 양 예산을 남용하는 모습은 기괴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예산 낭비가 비단 이 지자체만의 문제일까.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엔 경기 활성화를 들고나오면 뭐든 용서가 되는 풍토가 생겼다. 근본적으로는 지역구 챙기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 불용액 문제와 맞물려, 다음 해 예산에서 불이익을 피하려는 구조적 문제가 점차 심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아예 2020년부터 지자체의 재정 현황을 분석할 때 예산을 편성해놓고 쓰지 못한 ‘불용액’과 다음 해로 넘기는 ‘이월액’ 비율을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재정 효율성·건전성·책임성 등 3개 평가지표 가운데 건전성 대신 ‘계획성’ 분야를 신설했다. 국민 혈세를 줄줄 흘려도 계획적으로 흘리면 오히려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는 것인데, 과연 그 누구를 위한 평가인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기재부의 지방 재정을 위한 외평기금 동원은 포퓰리즘의 소산으로 재정 건전성을 위한 국채 발행 자제가 진정한 해법인지 의문이 든다. 더구나 국민이 낸 세금이 불용액 방지 명목으로 무리하게 소진되는 구조는 조세 포탈을 합법적으로 방조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처럼 기형적인 재정 운영 방식으로는 임시방편만 확대재생산되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 몫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기 위한 철저한 감시와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예산을 소진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필요한 곳에 배분되는 재정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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