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목수로 사는 이유
반복되는 육체노동 힘들지만
흘린 땀만큼 정직하게 벌어
기자로 일하다, 속된 말로 ‘노가다꾼’이 됐다. 펜과 망치 사이 간극이 크다 보니 남들이 묻는다. 어쩌다? 누가 떠민 거 아니다. 자발적 선택이었다. 그럼 또 이렇게들 짐작한다. 뒤늦게 적성 찾은 거냐고.
반만 맞다. 배곯아가면서 이상 추구할 만큼 우아한 인물 못 된다. 한 번쯤은 목수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목수가 됐고,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즐겁긴 하다.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가 목수로 사는 이유 말이다. 거두절미하고 돈 얘기다.
공사판에서 일한다고 하면 이따금 안쓰러운 시선으로 본다. 배운 게 없어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때우는 가난한 노동자. 그게 우릴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이다. 언젠가 만난 어른은 “그래,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라면서 밥까지 사주려 했다. “저기요? 잠깐만요. 밥은 제가 사드려야 할 것 같은데”라는 말은 차마 하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공사판에서 일하면 정말로 가난할까? 대한건설협회에서 ‘2024년 상반기 건설업 임금 실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내 직업 형틀목수 일당은 27만4978원이다. 보고서에서도 ‘원가계산에 의한 예정가격’이라고 하니 약간의 편차가 있는 듯하다.
자투리 빼고 27만원으로 형틀목수 연봉 한번 계산해 보자. 한 달에 20일씩 1년간 꾸준히 일했다 치면 6480만원(27만원×20일×12개월)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내가 2023년에 실제로 번 돈과 큰 차이 없다.
참고로 국세청에서 발표한 ‘2022년 시도별 근로소득 신고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월급생활자 연소득이 4214만원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봐도 2023년 11월 기준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1인당 월평균 임금이 371만원이다.
물론 우린 일용직이니까 성과급 없고 월차나 휴가 수당 없다. 복지 혜택과 퇴직금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난한 노동자라는 시선에 동의할 수 없다. 어디 가서 거들먹거릴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친구랑 밥 먹고 계산할 때마다 신발 끈 묶는 척해야 하는 수준도 아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번 돈이 꽤 정직한 돈이다. 난 종종 땀은 정직하다고 말한다. 땀은 거짓말 안 한다. 그 어떤 명품 배우도, 이를테면 송강호도 연기로 눈물 흘릴 순 있어도 땀을 흘릴 순 없을 거다. 육체노동이라는 게 그렇다.
한 시간 부지런 떨면 합판 100장 나른다. 반장 눈치 봐가며 슬슬 ‘삐대면’ 50장밖에 못 나른다. 내 몸 움직인 만큼 그렇게 흘린 땀방울 양만큼, 딱 그만큼 결과가 나온다. 우리 일당은 그 땀방울과 정비례한다. 그러므로 정직하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매우 직관적이다. 한승태 작가는 ‘어떤 동사의 멸종’에서 “일당을 받는 육체노동은 인생을 고체화시킨다. (중략) 이 일을 하는 동안 인생은 모호하기로 악명 높은 시간 개념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무언가, 두 손으로 꼭 붙들고서 집고 휘두를 수 있는 단단하고 구체적인 무언가였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일당 받는 노동자가 겪어야 하는 설움이야 셀 수 없지만(그건 그것대로 따로 다룰 문제고), 그래도 퇴근할 때 내 손에 쥐여주는 1만원짜리 20여장은, 한마디로 ‘실제 상황’이다.
회사 다닐 땐 결코 맛볼 수 없던 감각이다. 그 감각이 날 살아가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 사회에 대단히 기여하는 사람은 아니어도 어쨌거나 내 삶만큼은 주체한다고 느낀다.
망치질이 매일 즐거울 수 없다. 반복적인 육체노동이 때로는 지겹다. 그것보다 더 자주 고되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야말로 천근만근이다. 어떤 땐 손목이 너무 아프다. 허리가 부서질 것 같을 때도 있다.
새벽에 도무지 일어날 수 없어 악다구니가 받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와 톱밥 묻은 옷 털며 일당 받을 때면 ‘아 오늘도 열심히 살았구나’ 하고 스스로를 토닥이게 만든다. 내가 목수로 사는 이유? 고상한 거 없다. 돈이다. 땀에 찌든 돈.
송주홍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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