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심리만화경] 한강 작가님, 작가님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한강 작가 책 읽었어?” “아니.” “웬일이야?” “늙었나봐.” “뭔 소리래.”
얼마 전 친구와 문자로 나눈 대화이다. 활자 중독자로 틈나는 대로 뭔가를 읽는 버릇이 있는 내가 아직도 한강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하니 의외였나 보다.
사실 읽고 싶은 마음은 많았지만,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작품이 담고 있는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대학생 시절의 나는 이렇지 않았었다. 내가 선호하는 작품들은 시작하고 1분 안에 혈흔이 낭자하거나,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버겁다.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에 눈이 간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심리학에서는 노년기의 긍정성 편향이라는 개념이 있다. 젊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는 반면, 노년층 사람들은 긍정적인 정보에 더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사회정서적 선택 이론에 따르면, 노년층은 스스로에게 허용된 시간의 제한을 느끼기 때문에 긍정적 경험을 추구하고, 부정적 경험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노년기라 칭하기는 조금은 이른 나이인데….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나의 변화가 시작되었던 건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수많은 스트레스와 직면했던 때였었다. 실제 삶이 복잡하고 부정적인데, 굳이 소설도 그런 내용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코로나 시기와 같은 경제 불황기에 스트리밍 서비스 등의 저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오락 콘텐트의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처럼, 우리는 정서적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울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일종의 방어 기제로 긍정적 정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니 말이다.
그래서 마무리하자면, “한강 작가님, 제가 작가님을 싫어해서 책을 아직 안 읽은 것은 아니에요. 제 아이들과 학생들이 속을 좀 덜 썩이면, 그땐 저도 작가님의 책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최훈 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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