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재편합니다” 하이닉스 외침 후폭풍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4. 10. 2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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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반도체 시대 끝나나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을 위한 필수 장비인 ‘TC본더’ 시장이 시끄럽다. HBM 선두 주자인 SK하이닉스가 TC본더 공급사 다변화를 추진하면서다. 그동안 SK하이닉스용 TC본더는 사실상 한미반도체의 독점 공급이었다. 증권가에서 ‘엔비디아-SK하이닉스-한미반도체’ 밸류체인이 하나의 주가 공식이 됐을 정도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올해 초부터 안정적 장비 수급을 목표로 신규 공급사를 찾아 나선 상태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ASMPT와 국내 한화정밀기계 등을 접촉해 추가 도입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최근 한화 판교 R&D센터를 방문해 TC본더 장비 시연을 지켜봤다. 사진은 한화 판교 R&D센터를 방문해 한화정밀기계가 준비한 방명록에 서명하는 모습. (한화 제공)
HBM용 TC본더가 뭐길래

칩 적층 위해 없어선 안 돼

TC본더 열풍을 이해하려면 HBM 원리를 알아야 한다. 과거 컴퓨터 그래픽 장치(GPU)와 메모리는 반도체 기판 위에 구분돼 탑재됐다. 하지만 AI 시대로 접어들며 GPU가 수행해야 할 연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GPU에 일감을 제공하는 메모리를 GPU 옆에 딱 붙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GPU 옆에 메모리를 붙일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인 탓에 충분한 메모리 용량을 확보 못하게 된 것. 이 과정에서 해법으로 떠오른 게 HBM이다. 칩을 여러 개 쌓는 적층 방식으로 메모리 용량을 늘린 형태다.

HBM을 만드는 곳은 메모리 3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다. 하지만 모든 생산 과정이 이들만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니다. HBM을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반도체 장비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게 TC본더다. HBM은 적층 과정에서 D램을 일정한 간격으로 쌓고 고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열과 압력을 이용하는 ‘TC(Thermo-Compression) 본딩’을 거친다. 이때 활용되는 장비가 TC본더다. TC본더를 열 압착 본딩 장비라고 부르는 이유다. 메모리 3사는 자체 TC본더가 없다. 외부에서 사들인다. 다만 삼성전자의 경우 자회사 세메스 등에서 TC본더를 납품받는다. 결국 외부 공급사가 노릴 타깃은 SK하이닉스뿐이다.

SK하이닉스용 TC본더의 경우 지금까진 한미반도체 독점이었다. 2017년 일찌감치 SK하이닉스와 협업해 TC본더를 개발한 덕분에 수혜를 입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SK하이닉스에서 수주한 금액만 3000억원 이상이다. 덕분에 한미반도체 실적도 고공행진 중이다. 한미반도체는 올해 3분기 매출 2085억원, 영업이익 99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68.4%, 3320.9% 증가한 수치다. 분기 실적 기준 역대 최대치다. 3분기 기준 누적 매출은 4093억원, 영업이익은 1834억원으로 집계됐다. 한미반도체는 올해 연간 매출 전망치로 6500억원을 제시했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이 고대역폭메모리(HBM) 공정 장비 3세대 모델인 ‘듀얼 TC본더 그리핀’ 출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미반도체 제공)
‘QT 탈락 논란’ 반박한 한화

2025년 TC본더 3파전 열리나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SK하이닉스가 TC본더 공급망 재편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공급사 후보는 단연 한화정밀기계다. 한화그룹 차원에서 반도체 장비 사업 드라이브를 걸며 TC본더 기술력 강화 등에 힘쓰고 있어서다. 지난 10월 22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한화의 미래 기술 연구개발(R&D) 전진기지인 ‘판교 R&D 캠퍼스’를 찾아 TC본더 장비 시연을 지켜볼 정도다. 김 회장은 “반도체는 국가 기간 산업으로 첨단기술 혁신을 견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공개석상에서 김 회장이 반도체를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올해 초부터 관련 업계 관계자를 중심으로 한화정밀기계가 SK하이닉스용 TC본더 납품을 준비 중이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한화정밀기계는 지난 6월부터 SK하이닉스 납품을 위한 품질 검증(퀄테스트)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화정밀기계는 그간 공식 입장을 발표하진 않았다. 구매 주문(PO) 이전 단계에서 진행 정도를 공개하는 건 리스크가 크고, 비밀 유지 의무 등에도 위배될 수 있어서다.

조심스럽게 진행되던 중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난 10월 16일 한화정밀기계의 TC본더가 SK하이닉스 납품을 위한 퀄테스트를 탈락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 한화정밀기계는 즉시 반박 자료를 냈다. 이례적으로 홈페이지에 안내문도 내걸었다. 한화정밀기계 측은 “SK하이닉스에 테스트용 장비를 납품해 검증이 진행 중”이라며 “현재 테스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검증이 완료되는 대로 납품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사실상 시장에서 돌던 소문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 관계자는 “단순 언론 보도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내부에서 SK하이닉스 TC본더 공급망 진입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는 것 같다”며 “상반기부터 테스트를 받고 있으니 연내 생산라인에 투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ASMPT도 SK하이닉스 공급망 진입이 점쳐진다. 이미 SK하이닉스가 주문을 시작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대로라면 SK하이닉스 납품용 TC본더를 두고 ‘한미반도체’ ‘한화정밀기계’ ‘ASMPT’ 3파전이 펼쳐지는 셈이다.

딩연히 한미반도체는 경쟁사를 견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은 3분기 실적 자료에서 “한미반도체와 경쟁하고 있는 ASMPT는 중국 선전, 청두 공장에서 장비를 생산하고 있어 조립 품질과 장비 성능 면에서 한미반도체에 뒤처지는 상황”이라며 “한미반도체는 HBM용 TC본더 세계 시장 1위”라며 “1980년 설립 이후 45년간 축적된 업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객 만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한미반도체가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평가했다.

다만 3파전이 펼쳐지더라도 한미반도체가 당분간 우위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기술력 격차가 좁혀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미반도체 근소 우위라는 평가다. 오히려 진짜 승부는 ‘하이브리드 본딩’에서 펼쳐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열과 압력을 이용하는 TC 본딩과 달리 칩과 칩 사이 가교를 없애 직접 포개어 넣는 형태다. 적층이 높아질수록 유용하지만, 상대적으로 기술 난도가 높다. 시장에선 HBM4 12단까지는 TC 본딩이 유효하지만 16단으로 늘어나는 순간 하이브리드 본딩에 자리를 넘겨줄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에 한미반도체와 한화정밀기계 등은 이미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를 준비 중이다. 한화정밀기계는 국내 전공정 업체인 제우스와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를 준비 중이고 한미반도체는 2026년 하이브리드 본더 출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 7월 곽동신 부회장은 “2026년 하반기 하이브리드 본더를 출시할 계획”이라며 “2024년 매출 목표는 6500억원, 2025년은 1조2000억원 그리고 2026년은 2조원으로 매출 목표를 상향한다”고 강조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2호 (2024.10.30~2024.1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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