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위해 만든 게임, 그 시작은 '부자 갈등'

안지훈 2024. 10. 2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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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연극 <킬롤로지>

[안지훈 기자]

연극 <킬롤로지>, 여기서 '킬롤로지'는 게임이다. 싸움을 벌이는 여타의 게임들과는 달리, 킬롤로지는 오직 살인을 위한 게임이다. 더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를수록 높은 점수를 획득한다. 게임을 만든 사람은 '폴'.

연극에는 폴 말고도 두 명의 인물이 더 등장한다. 게임과 동일한 방식으로 희생된 '데이비', 데이비의 아빠이자 앞으로 닥칠 피해를 막기 위해 폴을 찾아가는 '알란'. 이렇게 3명이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킬롤로지>를 3인극이라고 보긴 어렵다.

인물들이 교차하거나 상호작용하는 장면은 거의 없고, 대체로 한 명씩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식으로 극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 개의 1인극이라고 보는 것이 적확한 접근이다.

독백이 많은 작품의 특성과 좌우로 긴 무대는 잘 조응한다. <킬롤로지>가 공연되는 대학로 TOM 2관은 상하로 깊지 않고 좌우로 넓은 무대, 단차가 거의 없고 무대와 바로 붙어있는 객석이 특징이다. 이런 극장 구조는 실제 인물의 회고를 듣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연극 <킬롤로지> 공연사진
ⓒ 연극열전
우리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독특한 전개 방식 탓에 어색하게 느낄 관객도 있겠지만, 연극이 가진 문제 의식은 명확해 보인다. 연극 <킬롤로지>는 한 마디로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특별히 나쁜 누군가의 폭력, 악인의 살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잠재해있는 폭력성을 꼬집는다. 누구나 특정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세 사람의 회고를 통해 증명한다.

연극을 토대로 폭력성의 조건을 정리해보자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약한 상대, 즉 자신이 비교적 우세한 위치에 있을 때다. 게임과 같은 방식으로 폭력을 당한 데이비는 피해자의 지위에만 있지 않다. 그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다.

학생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만만한 선생님을 의자로 내리치고, 평소 악행을 저지르던 에디라는 인물이 자신보다 작은 체구라는 사실을 직면하자 폭력을 휘두른다. 이대로 자신의 강아지를 내려놓는다면 강아지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내려놓는다.

가해자이기도 했던 데이비는 자신이 피해자일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게 뭐가 공평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자동차를 보고 던진 질문이다. 여기서 폭력의 조건과 특징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바로 '불공평함'이다. <킬롤로지>는 폭력에 권력 관계가 존재함을 상기시킨다.

두 번째 조건은 폭력에 대한 거부감의 제거다. 아들의 희생을 목도한 알란은 게임을 만든 폴을 찾아간다. 게임과 같은 방식으로 아들이 당했으니, 게임을 만든 폴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폴은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며 자신의 책임을 부인한다. 이에 알란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편다.

장전만 할 뿐 총알을 발사하지 않았던 군인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인간에게는 본디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거부감은 제거될 수 있는 것이라고, 군대는 실전과 같은 훈련을 통해 군인이 살인에 둔감해지도록 한다고 설명한다. 외부 요인에 의해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은, 게임을 만들어 유저들의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제거해 실제 살인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논리를 구성한다.

이는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설명을 떠오르게 한다. 메를로퐁티는 '몸이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명제를 내세웠다. 사유 기능을 수행하는 두뇌는 제한적이고, 우리 몸에 체화된 무언가가 사람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우리는 종종 의도하지 않은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이쯤에서 오늘날 미디어를 생각해본다. 미디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그 가운데 폭력적인 이미지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미디어라는 외부 요인이 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제거하고 있진 않은지, 그렇게 누구에게나 잠재해있는 폭력성이 꿈틀거리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아가 <킬롤로지>는 미디어뿐 아니라 폭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외부 요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연극 <킬롤로지> 공연사진
ⓒ 연극열전
폭력과 사회를 생각하게 하는 연극

특정 조건만 만들어지면 누구나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명제는 게임 '킬롤로지'를 다수의 유저들이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통해 입증된다. 게임은 특이한 취향을 가진 소수의 프로그래머가 만드는 게 아니다. 다수의 유저들이 새로운 살인 방식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게임은 더 정교해진다.

앞선 이야기들에 비추어봤을 때, 우리는 폭력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연극이 그려내는 폭력은 개인적 차원의 비행이 아니라, 다분히 사회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등장인물들은 결핍을 경험한 바 있다. 잔혹한 살인 게임을 만든 폴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를 두었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캐릭터와 합성해 죽이는 게임을 만든 것, 이것이 킬롤로지의 시작이었다. 이후로도 폴은 아버지와의 갈등을 묘사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데이비 역시 아버지 알란이 일찍 집을 나가고, 자신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이런 결핍과 억압의 경험도 연극의 주제 의식과 결부해 생각해봄 직하다.

한편, 연극이 이야기하는 폭력을 살인 수준의 극단적인 형태로 국한할 필요는 없다. 살인을 소재로 하지만, 연극이 다루는 폭력은 일상적 폭력까지 아우른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행하는 크고 작은 폭력,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대해서도 관객은 생각해야 한다.

연극 <킬롤로지>는 12월 1일까지 공연된다. '알란' 역에 김수현·이상홍·최영준, '폴' 역에 임주환·이동하·김경남, '데이비' 역에 최석진·안지환·안동구가 출연한다.
 연극 <킬롤로지> 공연사진
ⓒ 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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