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엉망으로 만든 사람 이름 새겨진 훈장, 안 받겠다"

이민선 2024. 10. 2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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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 인터뷰] 정부 '근정훈장' 거부한 김철홍 인천대학교 교수

[이민선 기자]

 김철홍 인천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노동과학연구소장). 사진은 2015년 김 교수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할 당시 모습.
ⓒ 김지현
"나라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사람의 이름으로 주는 훈장은 받을 수 없어 거부했다."

2025년 2월 정년 퇴직을 앞둔 김철홍(66) 인천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가 정부가 주는 근정훈장을 거부하면서 밝힌 이유다.

근정훈장은 '공무원으로서 그 맡은 바 직무에 힘을 다해 부지런히 노력해 공적이 뚜렷한 이에게 수여하는 훈장'인데, 김 교수는 지난 22일 '퇴직교원 정부포상 미신청 확인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그는 "퇴직 교원 정부포상 후보자라고 안내받았지만, 포상 신청을 하지 않으며, 향후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1990년대부터 인천의 노동현장을 찾아 산업재해, 노동자의 건강권과 관련된 연구를 해왔다. 2002년 건강한 노동세상을 창립해 2023년까지 초대 대표를 역임했고, 2001년에는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를 만들었다.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전국교수노동조합 국공립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근정훈장 거부 사유를 알린 김철홍 교수는 29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풀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나라가 나락에 빠졌다"

- '정년 퇴직 교수의 훈장 거부'가 이슈가 됐다.

"허허(웃음). 일이 커졌다."

- 훈장을 거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정부가 좋든 나쁘든 더 나은 곳으로 이 나라가 가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 이후 기대와 바람과는 완전히 반대로 갔다. 나라가 나락에 빠졌다. 일례로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같은 일은 국가적 경사로 국가가 축제 분위기가 돼야 하는데 대통령부터 제대로 된 축하를 한 적이 있나.

이런 사례로 봤을 때, 지나친 정도가 아니라 나라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그런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주는 훈장이라는 데 문제 의식이 있었다. '대통령'이라는 수여자의 대표로서 직함이 들어가는 건 이해가 되는데, 왜 이름이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사람이 주는 상을 나는 받을 수 없다는 취지다."

- 주변 반응은?

"그냥 뭐... 학내에선 '저 양반 평소 하던대로 나가는 날에도 사고 치고 나가는 구나' 같은 분위기다(웃음). 오히려 시민사회에서 응원 전화가 10통 이상 왔다. 새롭게 힘을 받았다."

- 언론에 공개된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 입장문에는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대한 내용도 언급돼 있다.

"R&D 예산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기초과학 연구가 근본이 돼 길게 가야 하는 것이다. 단기 성과만 보고 예산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정부 방향이 이렇다 보니(R&D 예산 삭감 등) 젊은 교수들 사이에 기업 연구 프로젝트만 찾아 다니거나 (연구개발을) 자포자기 하는 등의 분위기가 있다. 이런 정책을 펴는 사람들이 주는 훈장을 못 받겠다는 것이다."

- 훈장 거부를 통해 윤석열 정부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통령은 어찌됐든 잘하라고 선출된 5년짜리 공무원이다. 또한 어느 사회든 여러 계층과 사고방식이 존재하는데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잡힌 정책을 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을 보라. 몇 안 되는 검찰을 통해 자기 식구들을 감싸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나. 대한민국을 대선 승리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이런 점을 잘 이해하길 바란다."

아래는 김철홍 교수가 쓴 '이 훈장 자네가 가지게!' 전문이다.

며칠 전 대학본부에서 정년을 앞두고 훈·포장을 수여하기 위해 교육부에 제출할 공적 조서를 작성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공적 조서 양식을 앞에 두고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먼저 지난 시간 대학 선생으로 내가 한 일들이 어떤 가치가 있었기에 내가 훈장을 받아도 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훈장이란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뚜렷한 공로를 세운 자에게 수여되며, 공로의 정도와 기준에 따라 받는 훈장이 다르다고 한다. 대학의 교수라고 하면 예전보다 사회적 위상이나 자긍심이 많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아직은 일정 수준의 경제 사회적 기득권층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이미 사회적 기득권으로 많은 혜택을 본 사람이 일정 이상 시간이 지나면 받게 되는 마치 개근상 같은 훈·포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훈·포장 증서에 쓰일 수여자의 이름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훈포장의 수여자가 왜 대한민국 또는 직책상의 대통령이 아니고 대통령 윤석렬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윤석렬은 선출된 5년짜리 정무직 공무원이다. 나는 만약에 훈·포장을 받더라도 조국 대한민국의 명의로 받고 싶지, 정상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가치와 자격이 없는 대통령에게 받고 싶지 않다. 무릇 훈장이나 포상을 함에는 받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그 상을 수여하는 사람도 충분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노벨 문학상 수상을 제대로 축하하지도 못하는 분위기 조장은 물론, 이데올로기와 지역감정으로 매도하고, 급기야 유해도서로 지정하는 무식한 정권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할 연구 관련 R&D 예산은 대폭 삭감하면서, 순방을 빙자한 해외여행에는 국가의 긴급예비비까지 아낌없이 쏟아붓는 무도한 정권이다. 일개 법무부 공무원인 검사들이 사법기관을 참칭하며 공포정치의 선봉대로 전락한 검찰 공화국의 우두머리인 윤석렬의 이름이 찍힌 훈장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나라를 양극단으로 나누어 진영 간 정치적 이득만 챙기는, 사람 세상을 동물의 왕국으로 만들어 놓고, 민중의 삶은 외면한 채 자신의 가족과 일부 지지층만 챙기는 대통령이 수여하는 훈·포장이 우리 집 거실에 놓인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친다.

매 주말 용산과 광화문 그만 찾게 하고, 지지율 20%이면 창피한 줄 알고 스스로 정리하라. 잘할 능력도 의지도 없으면 그만 내려와서, 길지 않은 가을날에 여사님 손잡고 단풍이라도 즐기길 권한다. 훈장 안 받는 한풀이라 해도 좋고, 용기 없는 책상물림 선생의 소심한 저항이라고 해도 좋다.

"옜다, 이 훈장 자네나 가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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