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곳에서 만난 두 여인의 시적 대화
[황융하 기자]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서사로 하는 영화들을 일별하자면, 대개 그 무게에 압도되면서도 동시에 삶의 본질을 조명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생의 종착지에서 비로소 보이는 희미한 빛, 거기에 담긴 우정, 치유, 그리고 내면의 평온이 천천히 드러나는 과정이다. 이게 더러는 획일적이거나 고답스러운 서사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죽음은 공포가 아닌 삶이자, 이해와 담담하게 수용할 대상이라는 걸 솔직히 털어놓는다.
▲ The Room Next Door 인그리드(좌)와 마사, 영화 스틸컷 |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
두 배우의 연기는 영화의 정수이자, 감정의 무게를 견디는 축이다. 줄리안 무어는 일상에서 한순간도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는 인그리드를, 연약하게 흔들리는 나뭇잎에 세밀하게 얹어주었다. 틸다 스윈튼은 죽음과 화해한 마사의 내면을 차분하고 쓸쓸하게 담아내며, 가을빛에 서 있는 고요한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마사가 인그리드에게 마지막 여행을 함께하자며 요청하는 장면은 이들의 관계를 결집하는 핵심이다. 이 순간에 진솔한 우정과 상호 이해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마사는 고통과 상실을 다시 품에 안으며, 지나온 시간을 한 번 더 머금는다. 여행에서 인그리드는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받으며, 생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두 사람은 삶의 무게와 조용히 화해하며, 마지막이 될 여행에서 서로에게 은은한 빛으로 머무른다.
두 인물의 대화는 개인적 회고에서 출발해 점점 더 깊은 사안으로 스며들어 간다. 시대의 상처와 질문들을 진중하며 거침없이 헤집는다. 기후 위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우리가 남긴 상처와 미처 되돌리지 못한 유산을 고발하는 창을 만든다. 이들은 자신이 밟아온 삶의 궤적과 함께 인류의 흔적과 결을 직시한다. 인간의 본연이 가진 결핍과 무게를 새삼 일깨우며 되새기게끔 자극제가 된다.
영화의 음악을 맡은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는 현악기와 피아노 선율로 인물들의 내면을 잔잔하게 감싸며, 서정적인 감정선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의 음악은 인물들 사이의 침묵과 고요를 보완하며, 관객을 감싸안는다. 음악은 죽음에 관한 서사를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비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고 편안한 감정을 전달한다.
▲ The Room Next Door 인그리드와 마사, 영화 스틀컷 |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
때문에 이 영화는 현대의 불안 속에서도 삶을 수용하고 잠시나마 찾아오는 평온이 인생의 긍정적인 메시지라는 걸 일러준다. 감독은 인물 너머에 시적 세계를 만들어내며, 관객에게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안정감을 찾도록 이끈다. 섬세한 연출 속에서 두 배우는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며 서로에게 희망의 빛으로 남는다.
영화는 긴 시와도 같은 형식미를 완성하는데,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촬영은 스페인의 마드리드였다고 한다. <더 룸 넥스트 도어>를 즐기게 된다면, 오래된 우정이 곁에서(옆방에서) 긴 침묵으로 지켜주되 숲이 되어준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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