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거시경제 슬라이드 도입 성공의 열쇠
[정재철 기자]
(1) 구조 개혁과 고이즈미 총리의 리더십
일본이 2004년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하는 연금 개혁에 성공한 원인은 구조개혁의 깃발을 흔들며 일본의 경제 개혁과 사회보장 개혁을 주도했던 고이즈미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일본 연금 개혁의 초안인 '방향성과 논점'을 제안했던 2002년 12월, 그리고 개혁의 수정안이자 최종안인 '사카구치 안'이 등장한 2003년 9월까지의 시기는 일본의 모든 언론의 관심은 '구조 개혁'을 향하고 있었다. 엄청난 재정적자를 줄이고 새로운 경제성장을 위해 일본 경제의 구조 개혁과 사회보장 개혁을 추진하는 고이즈미의 구조 개혁에 언론과 국민 지지가 매우 높았다. 그는 2001년 4월에 총리로 취임한 후, '자민당을 박살 내겠다'라며 자신을 총리로 뽑아 준 자민당의 반대 세력을 구조 개혁의 '저항 세력'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한때 내각 지지율이 80%를 넘는 등 최고의 인기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었다.
고이즈미 구조 개혁의 이론적 근거와 권위는 경제재정 자문회의에서 만들어졌다. 경제재정 자문회의는 총리와 경제 담당 대신, 민간 위원, 전문가팀 등이 의견을 교환하는 논의의 장소가 아닌, 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톱 다운 방식의 의사결정을 통해 각종 개혁 과제를 추진함으로써 '아레나가 아닌 엔진'의 역할을 했다. 총리에게 경제재정 정책에 관한 중요사항에 대해서 조사 심의하여 자문에 응하는 기구로 총리를 포함해서 경제 담당 장관 등으로 구성되었다.
경제재정 자문회의는 당시 연금 개혁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주로 보험료 인상에 강하게 저항하면서 사업주 부담의 인상을 피하려고 후생연금의 소득비례 부분의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 국고 부담이 1/3를 차지했던 기초연금을 전액 조세 방식으로 전환하자고 요구하기도 했다. 연금 개혁이 중의원 선거(2003년 11월 16일)에서 쟁점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자민당도 공약에 2003년 이내에 개혁을 확정해서 2004년 정기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정도의 추상적인 내용에 그치고 있었다. 이에 반해 고이즈미 총리는 "후생연금의 급여 수준은 50% 정도며 보험료 부담은 10%(노사 합쳐서 20%)가 근로자에게는 한도가 아닐지 생각한다"라고 발언하는 등 보험료율 20%와 소득 대체율 50%라는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하며 선거에 임하면서 정부안을 일정 지지하는 언론 플레이에 능한 태도를 보였다.
야당 역할은 모든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해도 당시 민주당의 연금개혁안에 대한 대응은 무책임했다. 사카구치 안은 정부안도 아니며 여당(자민당)은 자체 안도 없이 선거에 임하려 한다며 강하게 비판하면서, 본인들의 연금개혁안 제출했다. 그 내용은 기초 연금을 전부 조세로 바꾸고 연금제도를 일원화하겠다는 공약이었다.
전부 조세로 전환하자고 제안된 개혁안은 처음에는 스웨덴 방식이라고 주장하더니 어느 때는 캐나다의 기초 연금으로 가자는 등 우왕좌왕했다. 2008년 사회보장 국민회의라는 총리 직속의 자문기관에서 민주당 개혁안을 포함해 보험방식에서 조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개혁안을 시뮬레이션했다. 결과는 전환 비용이 개혁 비용보다 훨씬 비싸며 실현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용되어 개혁의 효과가 미비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금 정쟁이 민주당의 2009년 정권 교체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분명했다.
연금 개혁이 정쟁화되는 가운데, 고이즈미 총리는 소득 대체율을 50%로 유지한다는 것은 이미 자민당과 공명당이 합의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보험료율이었다. 정부안은 2003년 당시의 후생연금 보험료율은 13.58%였는데 이것을 매년 0.354%씩 인상하여 2017년에 20%가 되면 이후부터 보험료율을 고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막강한 발언권을 갖고 있던 경제재정 자문회의는 최종 보험료율을 15%로 낮추도록 강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 3일에 경제재정 자문회의에서 4명의 민간 위원은 '연금 개혁논의의 포인트'라는 내부 보고서를 별도로 작성하여 후생노동성이 작성한 두 개의 추계(최종 보험료율 20%와 18% 추계)에 더해 경제계 및 노동계가 요구하는 최종 보험료율 15% 안도 추가해서 추계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재계에서 2명, 학계에서 2명 등 총 4명으로 구성된 이 자문회의는 도쿄대학 경제학부 요시카와 히로시 교수, 오사카대학 경제학부 혼마 마사아키 교수, 도요타자동차 오쿠다 히로시 회장, 우시오 전기 우시오 지로 회장 등 총 4명이었다.
최종 보험료율 20%를 15%까지 낮추라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003년 11월 18일 경단련과 경제재정 자문회의는 이번에는 16%까지 낮추도록 압력을 가했다. 당시 경단련 회장이었던 도요타 그룹의 오쿠다(奥田) 회장은 "이번 연금 개혁에서는 미래세대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부담을 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후생노동성 안의 20%의 보험료율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미납과 미가입을 증가시켜 제도의 근간을 허물어뜨릴 것이다. 이전에 15%를 제안했으나 거부당해 이번에는 16%를 제안했다. 사실 경제계에서는 현행의 13.58%를 유지하는 것도 선택지"라며 보험료 인상에 강하게 저항했다. 여기에 보조를 맞추는 격으로 경단련과 일본상공회의소 경제동우회 등과 함께 '근본개혁 없는 후생연금 보험료율 인상에 반대한다'라는 성명을 냈고 노동 단체인 일본 노동조합 연합회도 보험료 인상에 반대했다.
자민당과 공명당 합의로 이미 급여 수준의 하한은 50%로 정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후생노동성은 향후 보험료율을 고정한 상태에서 재정 운영에 여유를 두려면 적어도 20%의 보험료율이 필요했다. 그러나 경제재정 자문회의를 중심으로 한 보험료율 최저 인상 주장에 밀리면서 결국 50%를 간신히 유지하려면 보험료율을 18.3%까지 낮출 수밖에 없게 되었다.
▲ 개혁 성공 요인 일본 거시경제 슬라이드 연금개혁 성공요인 |
ⓒ 정재철 |
*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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