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세대]②'취약한 체제' 이러다 남북 인종 달라진다
입대 기준 '南 초등생 키' 137㎝까지 하향
식량난으로 발육장애, '체제 취약성' 방증
편집자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일 방벽을 쌓아 올리면서 북한을 자기만의 요새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더 강력한 균열은 이미 내부에서 시작됐다. 배급제가 무너진 시절 나고 자란 청년 세대에게 '수령님'이 인민들을 지켜줄 거란 믿음 따윈 없다. 당을 위해 희생하기보다 '나'를 위해 살겠다는 이 청년들은 충성 대신 자유를 갈망한다. 70년 넘게 굳어진 김씨 일가의 독재를 뒤흔들 변화의 잠재력, 장마당세대에 대해 알아본다.
2006년 12월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진 한 장이 있다. 당시 유엔군사령부는 동해상에서 구조된 북한군 2명을 북으로 송환했다. 비교적 건강 상태가 양호했던 1명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걸어서 돌아갔는데, 당시 미군과 국군 사이에 선 그의 왜소한 체격이 눈에 띈 것이다.
북한이 자랑하는 여자 농구선수 박진아(2003년생·키 205㎝), 한때 이탈리아 명문 구단 유벤투스에서 뛰었던 비운의 축구선수 한광성(1998년생·키 178㎝) 등 예외도 있다. '장마당세대는 모두 왜소하다'라는 일반화는 어렵지만 대체로 발육에 문제가 있을 거란 연구 결과들이 많다.
입대 기준 137㎝까지 하향…남한 열 살짜리 키
'장마당세대'가 보여주는 특징들은 그 자체로 북한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고방식이 달라진 것은 물론, 남북 청년들의 평균 신장은 이제 10㎝ 넘게 벌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5일 평양육아원 내 어린아이들을 데려다 연출한 사진을 한가득 올리면서 "김정은 동지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피심을 받는 조선의 원아들은 참으로 행운아들"이라고 밝혔다. '수령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북한 아이들은 정말 잘 크고 있을까.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평균 신장이나 체중 등 신체에 대한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제기구 차원에서 건강 정보를 요구해도 터무니없는 수치를 제공하는 탓에 신뢰할 만한 통계로 활용하기 어렵다.
가장 먼저 확인해볼 만한 지표는 '군 초모(입대)' 기준이다. 2005년 국가정보원이 밝힌 자료를 보면,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군 면제 기준을 바꿨다. 이전까진 키 150㎝·몸무게 48㎏ 이하인 경우 징집을 면제했다. 변경 이후에는 키 148㎝·몸무게 43㎏ 이하로 낮췄다. 그런데도 '고난의 행군' 시기에 나고 자란 장마당세대의 체격이 작아 병력을 채울 수 없게 되자 기준을 더 낮췄다. 자유북한방송에 따르면 2010년 초모 기준을 키 137㎝까지 하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병역판정을 내릴 때 다양한 건강 상태를 따진다.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 규칙'에 따르면, 다른 조건을 차치하고 키 159㎝ 미만은 체중과 무관하게 4급 이하 판정을 받는다. 최저 기준만 놓고 보면 남북 군인들의 키 차이가 최소 22㎝다. 머리 하나만큼 벌어진다. 한국에선 열 살부터 평균 신장이 140㎝를 넘긴다. 초등학생보다 키가 작은 북한군도 있다는 이야기다.
취약한 北 체제, 생물학적 법칙까지 깨버렸다
북한이 초모 기준을 바꿔온 과정은 식량 부족과 그에 따른 발육 장애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체제 취약성은 '북쪽 지역 사람들의 체격이 더 크다'라는 생물학적 법칙까지 깨뜨렸다.
20세기 초반 한반도는 가난하고 배고픈 나라였다. 이후 100년 가운데 절반은 남과 북이 하나였고, 그 뒤로는 서로 다른 체제로 70년 넘게 살아왔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평균 체격을 가진 나라가 됐고, 전 세계적으로도 지난 100년간 '키가 가장 많이 자란 나라'로 꼽힌다.
북한은 어떨까. 전통적으로는 남쪽보다 북쪽에 살수록 평균 신장이 더 큰 경향이 나타난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서구에선 독일 생물학자 '베르그만의 법칙'이 이를 설명한다. 포유류 등 항온동물의 덩치가 추운 기후에 서식할수록 커지고, 더운 기후에 살수록 작아지는 편이라는 것이다. 동양에선 '북고남저(北高南低)' 현상이라고 부른다. 일본 인류학자 오바마 모토지는 중국 장쑤성·산둥성 등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조사했고, 1938년 논문에서 동일한 결론을 내놨다.
북한에선 장마당세대가 등장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이르러 이런 상식마저 무너졌다.
박순영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1999년 이후 탈북민 2384명과 한국표준과학원이 1997년 발표한 남한 성인의 평균 신장을 비교·분석한 결과를 2004년 6월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당시 60대 탈북민의 평균 키는 남성 164.4㎝·여성 151.8㎝로 남한 평균치(남성 164.1㎝·여성 151.2㎝)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대 초반 탈북민은 남성 164.9㎝·여성 153.9㎝로, 남한 평균치(남성 170.8㎝·여성 160.6㎝)보다 6㎝가량 작은 것으로 분석됐다.
박 교수는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식량 위기로 향후 남북 성인 간 신장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북한 어린이의 영양 상태가 호전되면 어느 정도 신장 증가가 일어나겠지만 10대 중후반 이후 영양 상태가 향상되면 키보다 체중 증가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남북 청년들의 키 차이, 11㎝ 넘게 벌어진다
북한은 취약한 체제를 지속하고 있으며, 식량 부족도 여전하다. 남북 청년들의 신장 격차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인종코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정우진 연세대 교수팀은 2000년 출생자를 기준으로 남북 청년들이 25세가 됐을 때 신장 예상치를 분석했다. 2025년 기준으로 남한 남성은 177.9㎝, 북한 남성은 166.3㎝로 무려 11㎝가량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여성의 경우에도 남한은 163.6㎝, 북한은 157.5㎝로 예측됐다. 결과값만 놓고 보면 남한 25세 여성과 북한 25세 남성의 평균 신장이 비슷한 수준이다.
결국 북한 사람들의 신장은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 12월 황영일·신동훈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팀이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평균 키는 남성 161.1㎝·여성 148.9㎝ 수준으로 추정됐다. 15~19세기 조선시대 116명(남 67명·여 49명)의 유골에서 채취한 넙다리뼈(대퇴골)를 이용해 평균 키를 분석한 결과다.
정보 관계자는 "70년짜리 생체 실험과도 같은 잔혹한 결과"라며 "남과 북의 인종이 달라질 정도로 김씨 일가의 독재가 주민들을 어떻게 착취해왔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탈북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무참사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신체적 차이'를 강조했다. 그는 "해외에 자녀들을 데리고 나갔다가 평양으로 돌아오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며 "북한에서만 살던 동급생 아이들보다 키가 5~10㎝ 정도 크고 피부 때깔도 다르다"고 증언했다.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그 이유다.
글 싣는 순서 ①'북한판 MZ' 변화의 중심에 선 사람들②'취약한 체제' 이러다 남북 인종 달라진다
③탈북한 뒤 국군 꿈꿨다는 보위부 출신
④턱수염과 찢어진 청바지, 北 소녀 흔들다
⑤전문가 제언 : 장마당세대가 가진 잠재력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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