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영 괴롭힌 '탈덕수용소' 신상... 이렇게 찾았다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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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재]
영화 <베테랑2>에는 인상적인 악당 캐릭터가 등장한다. '정의부장TV' 채널을 운영하는 박승환(신승환 분)이다. 이 캐릭터는 2015년 개봉한 1편에선 기자로서 주인공 일행을 도왔는데, 2편에선 유튜버가 되어 등장한다. 그는 정의를 위해 범죄를 파헤친다고 말하지만, 조회수와 후원금을 위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거나 조작된 정보를 뿌리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이른바 '사이버 레커(렉카)'다.
사이버 레커는 한국 사회의 주된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2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사이버 레커가 사회문제라는 데 응답자의 92.0%가 동의했다. 유명인들의 자살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무려 93.2%가 "사이버 레커들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고 지목했다. 지난달 취임한 심우정 검찰총장 역시 "사이버 레커의 악성 및 허위 콘텐츠"를 척결해야 할 주요 민생범죄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레커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범죄로 얻는 이익보다 불이익이 크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온라인 사이버렉카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오동현 민생경제연구소 공익법률지원단 변호사는 "(사이버 레커에 대한 처벌이) 대부분 벌금형이고, 그 벌금형조차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적다"라며, 사이버 레커들이 "더 큰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벌금을 내고 동일한 행동을 반복한다"라고 지적했다.
▲ 영화 <베테랑2>에 등장한 ‘정의부장TV’ 박승환의 모습(신승환 분) |
ⓒ CJ ENM |
2021년 6월 등장한 유튜브 채널 '탈덕수용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탈덕수용소는 인기 아이돌 그룹을 비롯해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렸다. 특히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은 핵심 표적이라 일컬어질 만큼 주된 공격 대상이었다.
2022년 11월 장원영의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탈덕수용소의 행위를 사이버 테러로 규정하고, 운영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운영자의 신원을 특정할 수 없어 절차가 진행되지 못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소속사의 정보 요청에 대해 구글코리아는 "(채널 운영자의 신상 등) 주요 정보는 미국 본사에서 관리한다"라며 사실상 협조를 거부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 만큼 익명 유튜브 채널은 한동안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실상 치외법권으로 운영되어 왔다. 2021~2023년 사이 유튜브 채널이나 커뮤니티 게시물에서는 "유튜브는 고소 안 된다", "유튜브는 개인정보 제공 안 해준다" 등의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인식은 사이버 레커와 그 추종자들이 날뛸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2023년 7월 탈덕수용소 운영자의 신원이 특정된다. 운영자는 미국 법원이 정보공개 명령을 통지한 그날 채널을 삭제했다. 이 소식은 사이버 레커들뿐만 아니라 국내에 서비스되고 있는 여러 해외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채널을 삭제하는 사이버 레커가 속출했고, 한동안 유튜브에서 악성 댓글이 줄어드는 모습도 나타났다.
스타쉽 측이 탈덕수용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디스커버리, 즉 증거개시제도를 통해서였다. 디스커버리란 영미법계 민사소송에서 공판이 이루어지기 전 당사자와 관련자들이 소송과 관련한 증거와 자료를 서로 공개하는 절차다. 스타쉽은 구글 본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정보제공명령을 신청했고, 이것이 인용되며 비로소 탈덕수용소의 신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사건에서 눈여겨볼 점은 한국인 간 법적 절차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외국 사법 제도를 통해 확보했다는 것이다. 미국 기업인 유튜브에서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국 지사가 존재함에도 피해자 측이 큰 비용을 들여 미국을 찾아야만 했다는 사실은 글로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국내 제도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 가수 강다니엘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튜버 '탈덕수용소'(오른쪽)가 지난 8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한 뒤 변호인과 함께 법정을 나서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래서인지 디스커버리를 통한 특정이 성공한 이후에도 국내에서는 주로 대형 기획사와 유명 아이돌 사건에 한정되어 이용되고 있다. 중소 기획사 그룹 팬들에서는 "탈덕수용소도 잡았는데, 왜 우리 그룹 괴롭힌 유튜버는 못 잡고 있냐"라는 볼멘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익명의 사이버 레커에 대응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사이버 레커 행위로 고통받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도 적지 않다.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고나 불행, 설령 진짜 잘못이라 할지도 그것을 인터넷에 전시하는 행위가 돈벌이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행위를 하면 반드시 잡힌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한 이유다.
▲ 조현재 / 데이터 분석가(소셜 코리아 자문위원) |
ⓒ 조현재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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