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학교 앞까지 드러누웠다…지자체는 화물차 주차전쟁

최모란 2024. 10. 29. 05: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기 안산시의 한 고교 앞에 설치된 바리케이드. 학교 앞에 불법주차하는 차량들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 최모란 기자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는 A고교 정문 앞. ‘주차금지’라고 적힌 바리케이드가 여러 개가 놓여있었다. 화물차 등의 주차를 막기 위해 학교 측이 설치한 것이다. A고교 관계자는 “밤만 되면 학교 앞부터 주변 도로들까지 불법주차한 화물차 등으로 주차장으로 변한다”며 “안전사고 등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학교 앞엔 주차를 못 하게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고 하소연했다.

A고교 일대는 안산시의 고질적인 불법주차 구역 중 하나다. 밤만 되면 A고교부터 월피동 주민센터까지 이어지는 200m 거리의 도로 양쪽 끝 차선이 전세버스와 대형 화물차, 일반 차량 등으로 가득 찬다. 아예 차선을 점령해 이중주차를 한 차들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중대형차량 주정차 금지’라고 적힌 안내판과 ‘차고지 외 밤샘 주차 상시 단속’을 알리는 현수막 주변에도 불법 주차를 한 차들이 즐비했다. 주민 김모(32)씨는 “주변에 크고 작은 공장들과 빌라촌 등이 몰려있으면서 주차공간이 부족해 불법주차를 하는 차량이 많다”며 “도로가 사실상 주차장으로 변하면서 중앙선을 침범해 이동하다가 사고가 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민근 경기 안산시장이 불법주차한 화물차에 계도장을 붙이고 있다. 안산시


대형 화물차 등의 불법 주차로 경기·인천지역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안전사고 등을 우려해 지자체가 상시 계도·단속에 나서고 있는데도 근절되지 않아서다. 28일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경기도에 등록된 화물차는 14만9953대로 2020년 12월(12만3329대)보다 22% 증가했다. 같은 달 인천시에 등록된 화물차 수도 20만2470대에 이른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운송용 화물차주는 영업 차량을 지자체에 등록할 때 지정된 주차구역을 표시한 ‘차고지 증명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수도권은 땅값이 비싼 데다 차고지 부지 확보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상당수 화물차주가 차고지 주소만 인근 타 시·도로 등록하고, 실제로는 수도권에서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불법주차로 적발된 화물차의 상당수가 다른 지역에 차고지 주소를 가지고 있었다”며 “화물차주들이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주거지 인근에 주차하면서 주택가 주변 불법주차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오후 경기 안산시 상록구의 한 도로에 주차된 화물차들. 최모란 기자


일부 지자체는 화물차 등을 위한 임시 주차장을 조성하고 나섰다. 안산시는 올해 단원구 성곡동과 초지동 등 3곳에 561면의 임시주차장을 만든 데 이어 내년 1월엔 상록구 팔곡동에 190면, 단원구 선부동에 380면 규모의 임시 주차장을 추가로 만든다. 안산시 관계자는 “공장이 많은 지역 특성 탓에 화물차 운행 비중이 높다 보니 이달 문을 연 임시주차장 이용률도 80%가 넘는다”며 “유휴 부지를 활용한 임시주차장을 추가 조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용인시도 처인구 마평교차로 유휴공간에 35면의 화물차 주차공간으로 운영하는 등 주차공간 확보에 나선 상태다. 경기도는 2026년까지 안산시와 화성시, 이천시 등 7개 지역에 공영차고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인천시도 계양구와 서구 등 총 3곳에서 공영차고지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4일 오후 경기 안산시 상록구의 한 도로에 주차된 화물차들. 최모란 기자


그러나 주차장 건립을 위해선 주민들의 반대라는 난관을 거쳐야 한다. 인천항만공사의 경우 2022년 12월 50억원을 투입해 인천 연수구 송도동 아암물류2단지에 402면 규모의 화물차 주차장을 만들었지만,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주민들의 반대로 아직까지 문을 열지 못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주차장이 외진 곳에 있으면 화물차주들이 이용을 꺼리고, 주택가 인근으로 가면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서 문제”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노상·부설주차장이나 주택가와 떨어진 공터, 차량 통행량이 적은 도로의 갓길 등 일부 장소에 화물차를 허용하는 ‘밤샘주차 조례안’을 도입하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경기도에서만 광명·시흥·안성·여주·용인·의정부·하남·화성시 등이 해당 조례를 제정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화물차 불법주차를 근절하기 위해선 불법주차 단속뿐만 아니라 화물차 주차 공간 조성도 필수적”이라며 “각 지자체 등과 논의해 화물차주들이 주차할 수 있는 합법적인 주차공간을 더 확보할 수 있도록 법령 및 제도를 개선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