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의 자유무역 시대 끝났다”는 TSMC 창업자의 진단

2024. 10. 29.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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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세계 반도체 업계의 대부 모리스 창(가운데) TSMC 창업자와 젠슨 황(오른쪽) 엔비디아 대표가 타이베이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설계, 한국·대만 생산, 중국 소비’…분업체계 균열


반도체 산업 경쟁력 위한 인프라 및 정책 지원 총력을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이 지난 26일 “반도체 자유무역의 시대가 끝났다”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고, TSMC는 요충지가 아닌 전쟁터가 됐다”고 말했다. TSMC는 엔비디아와 함께 인공지능(AI) 시대의 최대 승자로 꼽힌다. 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3분기 영업이익이 58% 급증하는 등 ‘깜짝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 17일에는 미국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에 이어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한 두 번째 반도체 기업이 됐다.

TSMC의 승승장구에도 모리스 창이 위기감을 드러낸 건 반도체 시장의 분업 체계에 균열이 생기고, 이로 인해 기존 성장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술패권 견제를 위해 미국이 동맹국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나서면서 ‘미국의 설계와 유럽의 장비, 한국과 대만의 생산, 중국의 소비’로 굴러가던 반도체 분업화 체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첨단 반도체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물자’가 되면서 국가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 강화를 위해 첨단 반도체 시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고, 반도체 부활을 모색하는 일본도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반도체 산업 강화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 자국화에 나선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자체 시장을 기반으로 한 기술 자립을 추구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국가 대항전으로 변하며 찾아온 ‘반도체 자유무역 사망’의 충격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TSMC의 매출 중 20%를 차지하던 중국 비중은 10%로 떨어졌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전 분기 49%이던 중국 매출 비율을 내년에는 20%로 낮췄다. 거대 시장인 중국이 사라진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9월 메모리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37.9%로, 12년 만에 40% 선이 무너졌다. 수출이 갉아먹은 3분기 성장률 쇼크에 반도체 수출 부진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우리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한국 반도체가 극복해야 할 위기는 반도체 보호무역과 국가 총력전뿐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후보는 해외 반도체 업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비판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고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길밖엔 없다. 기업은 초격차 유지의 기술력을 갖추기 위한 연구개발에 더욱 매진하고,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위한 기본 인프라 마련과 정책 지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피 튀기는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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