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철의 시시각각]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최현철 2024. 10. 2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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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 논설위원

지난 25일 오후 7시가 넘어 공수처에 인사혁신처의 통보가 도착했다. 소속 검사 4명에 대한 연임 추천을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했다는 내용이었다. 8월 중순 연임을 추천한 검사들의 임기가 이틀밖에 남지 않은 금요일 오후까지 재가가 나지 않자 공수처는 연임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대상자 4명 중 차정현 수사기획관과 이대환 부장검사가 속한 부서에서는 채 상병 관련 사건, 감사원의 권익위원장 표적 감사, 명태균씨 관련 의혹 등 민감하고 굵직한 사건이 쌓여 있다. 연임 재가가 이유 없이 미뤄지면서 상당수 수사가 멈춰선 상태다. 결국 이날 업무시간을 넘겨 재가 통보를 받고서야 한숨을 돌렸지만, 적어도 ‘수사 방해’의 효과는 톡톡히 낸 셈이다.

「 공수처 검사 연임, 임기 직전 재가
대통령 인사는 국정철학 메시지
윤 대통령, 뜻에 맞지 않으면 방치

“때를 맞춰야 하고, 그러고도 안 될 때는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 1998년 12월,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가 당 중앙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전 약속한 내각제 개헌에 미온적으로 나오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언론의 관심은 JP의 심기보다 ‘몽니’라는 생경한 단어에 쏠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받고자 하는 대우를 받지 못할 때 내는 심술’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우리말 풀이사전은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부리는 성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JP는 두 번째 의미로는 ‘틀물레질’이란 단어를 따로 썼다. 하지만 점차 몽니로 통합되고, 두 번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지난주 공수처 소동을 보며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몽니’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보다는 음흉과 심술·욕심이라는 의미에 눈길이 갔다. 법령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 연임 절차는 부처 내 인사위원회가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돼 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의견은 추천위원회의 구성과 심사 과정에서 관철된다. 추천 규정이 있는 다른 직책들도 대체로 비슷하다. 추천 위원을 정부와 여당, 야당이 비슷한 비율로 정하는 데다, 중립적인 인사들을 낙점하는 권한도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 의사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가끔 있다. 2대 공수처장이 그랬다.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변협 회장에 여야 추천 인사 2명씩 모두 7명으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가 구성됐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에 대해 법원행정처장이 끝까지 반대했다. 이례적으로 여덟 차례나 후보추천위를 연 끝에 해당 후보를 포기하고, 오동운 현 처장을 추천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넉 달이나 임명을 미뤘다. 그동안 ‘대행의 대행의 대행’이란 기형적 체제가 지속했다. 조직과 수사가 망가지는 게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 검사 연임안 재가 과정도 판박이다. 그나마 이번엔 거부 시 특검 도입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면 승인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9월 초 추천된 신규 검사 임용안은 이번에도 승인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인사는 자체가 메시지이자 국정 철학이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껄끄럽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방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의 힘을 빼고 무력화하는 ‘몽니’다. 공수처뿐 아니라 8개월째 장관이 없는 여성가족부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들고나온 특별감찰관도 마찬가지다. 일단 추경호 원내대표를 내세워 반대하고 있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워낙 낮아 버티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추천된 특별감찰관은 임명하겠지만, 나머지 검사 등의 파견 과정에서 한정 없이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크다.

정치는 타협과 양보의 과정이다. 국회와 사법부 등의 견제가 법으로 보장돼 있다. 설령 여당이 의회의 절대다수를 점하고 사법부까지 장악해도 민심이라는 파도를 넘어야 한다. 성격상 타협과 양보가 불가하고, 견제는 더욱 싫어하는 윤 대통령은 민심과 맞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번번이 맞서다간 정권이 전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최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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