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영의 마켓 나우] ‘통계의 함정’에 빠진 퇴직연금 논란
멕시코 정부는 1970년대 말 고속도로 수용능력 개선에 필요한 예산이 부족했다. 기발한 시도가 있었다. 페인트로 차선을 새로 칠해 4차로를 6차로로 늘려 수용능력을 50%나 끌어올렸다.
좁아진 차로폭 때문에 대형사고가 늘었다. 당국은 1년 후 6차선을 4차선으로 되돌렸다. 수용능력이 33% 줄었다. 정부는 지난 1년 반 동안의 조처로 교통 수용 능력이 17% 올라갔다고 발표했다. 50% 늘어났다가 33%가 줄었으니 17%가 올랐다는 ‘상대적’ 비교 수치에서 나온 엉터리 주장이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보면 2차선을 늘렸다가 다시 2차선을 줄였으니 제자리가 됐을 뿐이다.
독일 심리학자 게르트 기거렌처와 계량경제학자 발터 크래머가 쓴 『통계의 함정』은 통계를 둘러싼 실수와 오류, 조작 사례를 통해 통계 무지가 부르는 증상을 진단하고 속임수를 꿰뚫어 볼 방안을 제시한다. 특히 과거 수치와 비교하거나 범주가 다른 것들끼리 비교해 사실을 왜곡하는 ‘상대적’ 수치를 경고한다.
국민연금 개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퇴직연금 시장이 ‘수익률 통계의 함정’ 때문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민연금 수익률과 퇴직연금 수익률을 단순 비교하면서 해법을 위한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전문가가 대신 운용하는 국민연금과 개인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비교하는 것은 ‘사과와 배’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성과 평가의 기본 원칙인 ‘사과는 사과끼리, 배는 배끼리’를 무시하고 둘을 단순 비교하는 바람에 혼돈이 가중되고 있다.
퇴직연금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낮은 수익률의 근본 원인은 은행 정기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쏠린 자산배분이다. 쏠림의 원인은 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스스로 자산배분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금융회사들 역시 자산배분 개선에 소홀했다. 이제라도 국민연금처럼 전문가가 운용하는 제도를 퇴직연금에 도입해 가입자에게 선택권을 주면 된다. 국민연금 문제는 국민연금 내에서, 퇴직연금 문제는 퇴직연금 내에서 해법을 찾으면 효율적 해결이 가능하다. 연금의 성격과 목적이 엄연히 다르고 가입자도 다른 두 시장 영역을 잘못된 비교로 혼란스럽게 하면 사회적 논란과 비용만 더 커진다.
게르트 기거렌처는 절대치가 아니라 상대치를 이용하는 통계 속임수가 사랑받는 이유는, 작고 하찮은 문제라도 크고 주목할 만한 뉴스거리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통계를 만드는 목표가 무엇인지 항상 의문을 품으라고 조언한다. 통계 조작으로 특정 의견이나 결과를 팔려는 의도는 없는지 말이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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