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명운 건 베팅”… 북, ‘악의 축’ 새 플레이어로

박민지,박준상 2024. 10. 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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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고립 탈피 국제분쟁 직접 개입
경제·군사 대가 포함 중장기 노림수 우려
연합뉴스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내 우크라이나 전장(戰場) 최전선에 등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번 파병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한배에 오르며 체제 명운을 건 ‘위험한 베팅’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연말까지 1만명 이상 파병을 통해 북한은 경제적으로만 최소 월 수십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했다. 특히 북한 파병은 국제적 분쟁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개입이면서 새로운 형태의 도발이라는 시각도 있다. 북한이 러시아를 매개로 안보지형 변화의 플레이어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이어진 고립을 탈피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질서의 일원으로 편입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28일 “이번 파병은 김정은 체제의 가장 큰 모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90% 이상 사망’ 우려까지 제기되는 파병 결과가 체제 내부 불안과 불만을 고조시킬 수 있지만 손에 쥘 이득이 더 크다고 봤다는 것이다.

당장 예측 가능한 수확물은 경제·군사적 대가다. 김 위원장은 1차적으로는 한 달 300억원 이상의 통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실전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북한군의 능력치 향상까지 부수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북한은 낡은 재래식 무기 프로그램 현대화,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첨단 무기 기술 이전, 비효율적 국방체계 개선 노하우 전수 등 요구 사항도 ‘파병 명세서’에 올릴 것으로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김 위원장의 중장기적 노림수가 더 우려스럽다고 진단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북한이 단순히 돈과 무기를 더 얻자고 대규모 병력 손실 우려를 감내하며 이런 모험을 감행했겠느냐”며 “러시아와의 동맹 관계를 굳건히 하면서 결국 우리와의 전쟁을 대비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가장 급할 때 병력을 지원해 양국 관계를 ‘혈맹’으로 끌어올렸고, 이는 동시에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개입을 압박할 판을 깔아놨다는 설명이다.


북한 파병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을 위협하는 ‘악의 축 연합’(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내부의 역학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미국기업연구소(AEI) 석좌는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서방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평양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북한군이 배치된 건 탈냉전 이후 새로운 권력 정치”라며 “악의 축 정권이 서방에 고립돼 개별적인 위협을 가하던 시대는 오래전 일이 됐다”고 지적했다. 반서방연합이 2차 세계대전 ‘추축국’보다 경제·군사적으로 더 깊게 연결된 상태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를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와의 밀착을 강화해 유엔 주도의 대북 제재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향후 ‘불량국가 연합’과의 불법무기 거래 등 긴밀한 연계를 통해 서방 국가의 신경을 건드리며 국제적 존재감 부각을 꾀할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시드 사일러 선임고문도 최근 보고서에서 “김정은은 과거에는 강도 높은 도발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지만 러시아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제재 위협을 걱정하지 않고) 더 편하게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며 “조만간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형태의 강압적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지형이 급변할 텐데 (북한의 파병은) 러시아가 자신들을 버리지 않고 국제사회에 끼워주길 바라는 의도였을 수 있다”며 “파병은 러시아가 북한의 뒷배 역할을 전쟁 이후까지 해 달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서방동맹이 북한 파병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올리비아 얀치크 유라시아센터 연구원은 “향후 몇 주 동안 푸틴은 서방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북한군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라며 “북한이 적절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재앙적인 선례가 되고, 이는 훨씬 더 많은 수의 북한군이 곧 유럽에서 전투에 나설 여지를 준다”고 지적했다.

브루스 벡톨 텍사스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에버스타트 석좌와의 대화에서 “현재 파병은 더 큰 규모의 파병을 위한 선발대일 수 있다”며 북한이 파병 규모를 몇 배 더 늘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쟁 흐름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의 추가 파병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서방이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은 독자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한·미·일 3각 협력과 나토까지 포함한 다국적 협력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한국이 주도적으로 국제사회를 끌어내 대북 제재 수준을 높이고, 정보 루트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국정감사에 나와 “중국이 아마 (파병 과정 논의에서) 배제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북 영향력 감소는 평화 중재자를 자처해온 중국을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더 전략적이고 적극적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며 북·중·러 연대에 균열을 일으키는 전략을 주문했다.

박민지 박준상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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