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슬퍼도, 혼자 있지 말아요”…이태원 아픔 보듬은 한빛엄마 이야기
세상과 담 쌓았던 김혜영씨, 이태원 유족 곁에 함께해
2016년 방송사 비정규직 스태프 처우 문제를 고발하면서 스스로 세상을 떠난 고(故) 이한빛 PD는 자신의 노트북에 ‘연두, 빛’이라고 적은 메모지를 붙여놨다. 유서가 담긴 노트북을 여는 비밀번호였다.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모친 김혜영씨는 4년여간 그 뜻을 알지 못한 채, 인간관계를 끊고 지내왔다.
김씨는 우연히 4주기 추모식을 찾은 아들 친구들에게서 그 속뜻을 들었다. 이 PD가 생전에 즐겨 쓰던 ‘연대의 두근거림으로, 빛나는’의 앞글자를 딴 말이었다. 김씨는 지난 23일 인터뷰에서 “한빛이가 평소 혼자서 고립돼선 안 된다며 연대를 강조해왔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어디든 찾아가서 빛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김씨는 산업재해나 사회적 참사 유족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함께 아픔을 나누고,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민을 나누기 위해서다. 이태원 참사 유족도 그중 하나였다. 김씨는 “2년 전 참사 직후 마련된 서울 녹사평역 분향소에 갔는데, 영정사진으로 쓰인 젊은이들의 스냅사진을 보며 28살에 삶을 멈춘 한빛이를 떠올렸다”고 회상했다.
충남 아산에 사는 김씨는 매주 두 차례 일을 보러 서울로 올 때마다 참사 분향소에 들렀다고 한다. 자주 가다 보니 유족 가운데 김씨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고, 김씨는 그 인연으로 참사 생존자·유가족 구술집 출판 과정에서 기록단으로도 참여했다.
김씨는 “한빛이의 죽음 이후 내가 계속 고립을 택했다면 나는 폐인이 됐을지도 모른다”며 “누군가는 내게 오지랖이 넓다고 하지만, 나로 인해 다른 참사 유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2년 전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처음 접했나.
“참사 당일 잠들기 전 무심코 핸드폰을 보다가 이태원 소식을 접했다. 저는 이태원을 잘 몰라서 처음에는 외국에서 일어난 일인 줄 알았다. 이태원 근처 녹사평역에 분향소가 설치됐다고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158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사망했다니,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레 28살에 삶이 멈춰진 내 아들 한빛이가 떠올랐다.”
-이태원 유족들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나.
“내가 충남 아산에 사는데,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들렀다. 서울에 일주일에 2번 정도 일이 있는데, 어딜 가더라도 분향소를 들렀다가 갔다.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아이들이 놀러 가는 길에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놀러 가서 죽든, 일하다가 죽든,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분향소를 자주 갔는데, 유족 가운데 내가 이한빛 PD의 엄마라는 걸 알아봐 주시는 분이 있었다. 그런 기회가 닿아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 구술집에도 기록단으로 참여하게 됐다.”
-사회적 참사 현장에 자주 간다고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아들이 유서를 남긴 노트북 앞의 메모지에 ‘연두, 빛’이라는 비밀번호가 적혀있었다. 노트북을 열어보라고 적어둔 거였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인간관계를 끊고 살아왔다. 4년 뒤 한빛이 추모제에서 친구들을 만나 뜻을 물어보니 평소 한빛이가 즐겨 사용하던 말이라고 했다. ‘연대의 두근거림으로 빛나는’이라는 뜻이었다. 친구들에게 혼자서 고립되지 말라고 응원하며 쓰던 말이었다고 한다. 내게는 아들이 준 메시지였다. 그때부터 내가 체력이 될 때까지 어디든 찾아가서 빛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산업재해가 있었던 곳, 사회적 참사가 있었던 곳을 찾아다녔다. 그곳에 가는 나도 위로가 되고, 다른 유족들도 굉장히 힘이 됐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아직 나오는데.
“서울시청에 차려진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 있으면, 그 앞으로 정말 많은 청년들이 지나간다. 가다가 그냥 국화꽃 하나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잘 안되는 것 같더라. 이걸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민의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
-유족들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나.
“나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내게 돌리면서 고립됐다. ‘내가 젊을 때 누군가를 괴롭혀서 그런 건가’ ‘나의 죄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 아닌가’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에 대해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고, 유족끼리 의지하지 못하면 점점 더 고립된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 대응에서 보여준 책임 회피가 이런 상황을 악화시킨 게 아닌가 싶다.”
-사회적 참사를 겪은 유족들이 일상을 다시 찾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참사를 겪은 피해 유가족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 이후 만들어진 소통공간 별들의집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각각의 참사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 정부가 유족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잘 듣지 못하는 것 같다. 유가족이 스스로 느끼는 죄인 프레임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로가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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