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별과 마린스키 왕자…‘발레 수퍼 커플’ 뜬다

홍지유 2024. 10. 2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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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명의 망령들이 차례대로 아라베스크를 선보이는 ‘망령들의 춤’은 ‘라 바야데르’의 하이라이트. ‘발레 블록버스터’로 불리는 대작을 ‘마린스키의 왕자’ 김기민과 ‘파리의 별’ 박세은 페어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다음 달 찾아온다. [사진 국립발레단 ]

“이미 정답지를 갖고 있는 친구 손을 잡고 시험장에 들어가는 기분이에요. 춤은 연습보다 실전이거든요. 무대에 많이 서 본 사람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라 바야데르’를 얕게 공부한 것이지만 기민이는 달라요. 수십 번 ‘라 바야데르’ 무대에 섰으니까요.”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공연에서 무희 니키아를 연기하는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35)은 마린스키발레 수석무용수 김기민(32)과 14년 만에 합을 맞추게 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공연은 30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며, 둘은 다음 달 1일과 3일, 두 차례 무대에 선다. 두 스타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에 해당 회차의 티켓은 3분 만에 매진됐다.

2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박세은과 김기민은 “한국에 오기 전까지 자주 통화하며 ‘라 바야데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며 서로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내비쳤다.

김기민과 박세은은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 발레 수퍼스타다. 2015년 김기민, 2021년 박세은이 각각 러시아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발레단의 수석무용수가 된 이래로 이들에게는 늘 ‘동양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무용수상을 김기민은 2016년, 박세은은 2018년 받았다. 한국인 남자 무용수 중 이 상을 받은 이는 김기민이 유일하다.

이날 박세은은 김기민에 대한 칭찬을 끝없이 이어갔다.

박세은(左), 김기민(右)

“과거 무용수들이 20세기 발레 전설 루돌프 누레예프(1938~1993)를 보며 자랐듯 지금은 어린 무용수들이 김기민을 보며 자라고 있어요. 기민이는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무용수예요.”(박세은)

김기민 역시 “세은 누나는 어린 시절 제 우상이었다”고 했다.

“저희 형(국립발레단 수석 김기완)이 세은 누나와 예원학교 동기예요. 그때부터 누나는 유명했고 박세은과 춤추는 게 모든 전공생의 꿈이었어요.”

서로를 어떤 예술가로 바라보는지 묻는 질문에 두 사람은 망설임이 없었다. 박세은은 김기민을 “자신이 추고 싶은 춤과 무대에 대해 확신이 있고, 그 확신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예술가”라고 설명했다. 김기민은 “춤만 잘 추는 게 아니라 많은 무용수와 관객에게 영향을 주는 집념의 무용수”이라고 평했다.

두 사람이 처음 호흡을 맞춘 것은 2009년. 당시 유망주였던 두 무용수는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발탁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함께 무대에 오른 건 2010년 한국발레협회 ‘돈키호테’와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공연이다.

‘라 바야데르’로 무대에 선 경험은 김기민이 더 많다. 박세은은 “마린스키발레단과 달리 파리오페라발레는 ‘라 바야데르’를 자주 올리지 않는다. 내가 니키아로 출연한 것은 2010년 유니버설발레단, 2015년 마린스키발레단, 2021년 파리오페라발레에 이어 이번 공연이 네 번째”라고 했다.

김기민은 수십번 넘게 ‘라 바야데르’ 무대에 섰지만 “그래서 더 위험한 작품”이라고 했다.

“(같은 춤을) 많이 출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나는 어차피 잘 출 텐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 위험해요. 그래서 더 작품을 연구하려고 합니다.”

마린스키발레단의 투어 공연을 소화해야 했던 김기민은 공연을 5일 남겨두고 입국해 리허설 일정이 빠듯하다. 하지만 “파트너가 어떤 걸 원하는지 이해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누나의 춤 스타일을 편하게 느끼기 때문에 이미 리허설은 어느 정도 진행된 것”이라고 자신했다.

‘라 바야데르’는 ‘발레 블록버스터’로 불릴 만큼 스케일이 큰 대작이다.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 제사장 브라만과 공주 감자티의 사각 관계를 그렸다.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고전 발레의 아버지 마리우스 프티파의 원작을 발레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개작한 버전이다. 그리고로비치는 1991년 볼쇼이발레단을 위해 작품을 고쳤고, 2013년에는 국립발레단을 위해 한 번 더 작품을 재해석했다. 그리고로비치에 의해 재탄생한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막과 막 사이 흘려보내는 음악과 손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마임 장면에도 춤을 넣어 볼거리를 늘린 것이 특징이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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