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질 개선 vs 생태계 훼손…250억 경포호 인공분수 논란
강원도 강릉시가 동해안 대표 석호(潟湖)인 경포호 수질 개선을 목적으로 대규모 인공분수를 추진하고 있다. 강릉시는 저동 경포호에 수질 개선을 위한 환경개선사업으로 250억원을 들여 길이 400m, 최고 높이 150m의 수중 폭기시설인 인공분수를 만들겠다고 28일 밝혔다.
경포호는 바다와 이어지는 넓이 125만6204㎡의 자연호수로 겨울 철새도래지이자 자연보호 지구로 지정된 곳이다. 이번 환경개선사업은 물 순환 시설과 분수를 포함한 수중에 적정 규모 산소를 공급하는 폭기시설을 설치해 석호 순기능을 복원하는 게 핵심이다.
현재 경포호는 여름철이면 녹조 등 해조류 출현으로 심한 악취와 함께 수중생태계는 물론 경관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강릉시는 환경개선사업으로 수질이 개선되면 경포호에서 사라지거나 개체 수가 줄어든 어종과 식물·조류가 다시 돌아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 지역 단체에선 인공분수를 여름철마다 반복하는 악취나 녹조 등이 사라질 기회로 보고 있다. 박건식 강릉시 경포번영회장은 “수중 폭기시설인 인공분수가 생기면 수질이 개선되고 볼거리도 추가돼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강릉시는 지난 10일 강릉과학산업진흥원에서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 내외 수질 개선을 위한 환경개선사업’ 설명회를 개최했다. 설명회는 사업 필요성과 개요를 설명하고, 사업 시행 단계부터 시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모으기 위해 마련됐다.
강릉시는 사업 완료 후 경포호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운영·관리하기 위해 분야별 전문가를 포함한 협의체를 구성할 방침이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적극적으로 보완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강릉시 관계자는 “시민 의견을 듣고 투명하고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지역 시민단체는 생태계 훼손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경포호 인공분수 설치를 반대하는 시민모임은 지난 23일 강릉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여년 전에도 논란이 돼 중단한 경포호 대규모 인공분수 설치를 재추진하는 데 당장 사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시민모임은 “자연 자체로 가치가 큰 생태경관 자원인 석호에 인공구조물을 설치하면 자연호 가치가 상실되고 훼손된다”며 “한 번 사업이 진행되면 여러 가지 개발 사업이 연쇄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엔 자연호 기능이 훼손되고, 관광자원 가치도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단체도 인공분수 설치 장소가 겨울에도 얼지 않아 경포호를 찾는 겨울 철새들의 주요 먹이터라는 점과 인공분수 설치에 따른 퇴적물 분산 등 호수 생태계에 악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윤도현 강원영동생명의숲 사무국장은 “강릉시는 통·반장을 동원해 주민동의서를 받고 있는데 수질 개선 사업이라는 단 두줄 짜리 설명만 있을 뿐 정확한 판단 근거가 될 계획과 설명이 빠져있다”며 “대규모 인공분수 시설을 수질 개선 사업으로 둔갑시키고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진행하는 주민동의서 작성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강릉시는 2003년에도 경포호에 음악 분수를 설치하려다가 찬반 논란 끝에 무산된 적이 있다.
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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