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환율발작'...1400원 뚫리면 위험하다
[송두한 기자]
▲ 코스피·코스닥 약세 출발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이날 거래를 시작한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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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정부의 상황 인식이 무능하거나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환율이 발화점에 접근해도'관리 가능하거나 충격은 제한적이다' 정도가 주어진 디폴트 값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이 급등하자 '환율은 수준이 아니라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는 새롭고 놀라운 논리를 내놓았다. 한술 더 떠,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1400원이 뉴노멀"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궤변일 뿐만 아니라,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시스템 리스크로 진화 중인 외환 리스크
최근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나홀로 달러강세·기타 통화약세' 현상이 심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고 1400원 환율방어선마저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다. 원-달러환율은 지난 6월 27일 1395원까지 급등했지만, 미국의 금리인하에 힘입어 9월 27에는 1312원으로 무려 63원이 하락했다. 그러나 이달 25일에는 다시 1391원까지 급등하며 불과 한 달 사이에 79원이나 급등했다.
금융리스크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대외 충격에 취약한 나라를 중심으로 환율 리스크가 시스템 리스크로 진화하는 구간에 진입하고 있는데, 한국경제도 이에 속한다. 특히, 국내 금융시장은 외인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 조직적 자본 유출시 증시 충격이 환율충격으로 전이되는 태생적 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 주교국 주가 상승률 및 환율 절상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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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금융위기 때의 1400원과 지금의 1400원은 질적으로 다르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권한만 있고 책임이 없는 경제관료들이 관리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하다 정작 실기하거나 위기가 발현하면 잠수타고 사라지는 경우를 숱하게 목도한 바 있다.
▲ 월평균 원-달러환율 장기 추이
: '21년말(1184원) ⟶ '22년말(1297원)⟶ '23년말(1304원) ⟶ '24년 10월 25일(1391원)
단언컨대, 외환위기 때 1400원이나 지금의 1400원이나 위기 방어선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선을 사수하지 못하면 자본 유출 압력을 견디지 못해 둑이 무너지는 총체적 난국에 직면할 수 있다. 바람직한 정책 대응은 이를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금리대응 역시 정책의 기간불일치(Time Inconsistency of Policy) 문제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봉착한 상태다. 금리를 올려 환율을 잡자니 가계부채 부실이 울고, 금리를 내려 가계부채를 잡자니 환율이 우는 형국이다. 즉, 금리인상 수단을 통해 환율 위험을 제어할 여력이 완전히 소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질 가계부채(가계부채+개인사업자대출)는 2019년 2050조 원에서 올해 2분기 2604조 원으로 코로나부채 증분만 554조 원이나 된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코로나부채가 만성적인 고금리 충격에 노출되면서 중산층과 서민경제는 대출로 대출을 돌려막는 부채함정에 빠진 상태다. 부채발 경제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금리인하를 통해 잠재부실을 줄여야 하지만, 한은은 그럴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 실질 가계부채(가계부채+사업자대출)
: 2019년(2,050조 원) ⟶ 2022년(2,539조 원) ⟶ 2024년(2,605조 원)
국내증시는 미국발 증시버블 위험에 노출
선험적으로, 금융위기는 금리주기와 부동산경기가 동시에 정점을 찍은 이후에 금리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발현하곤 한다. 환율시장을 때린 1994년 금리주기(1997년 정점)도 그랬고, 버블붕괴를 수반한 2004년 금리주기(2008년 정점)도 그랬다. 물론, 2021년 코로나 금리주기(2024년 정점)도 이전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버블조정 국면은 반드시 '부채디레버리징'(자산가격 하락을 수반하는 채무조정) 과정을 거치게 된다. 금리주기는 내려가는 길이 더 험난한 이유다.
▲ 한-미 주가 장기 추세 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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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문제는 국내증시가 무질서한 금융정책에 노출되어 시장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자본시장 정책은 '경제 위에 정치'가 올라타면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이리저리 옮기는 형국이다. 특정 현안을 전면에 올려놓고 진영이나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는 사이, 시장 질서와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선참후계(先斬後啓) 방식의 공매도금지 조치, 뜬금없는 주식양도세 대주주 기준 상향(10억원에서 50억원), 부자감세에 깃든 기업벨류업 프로그램, 전가의 보도가 된 '금투세 폐지' 등이 이에 속한다. 그 결과, 주식시장에서 양질의 장기투자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투기성 단기자본이 그 빈자리를 메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처럼 설익은 정책과 시장이 충돌해 증시 체질이 허약해지면, 결국 외국인도 내국인 투자자도 물 빠진 주식시장을 떠나게 된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하고 자본시장 체질개선 프로젝트 가동해야
국내 금융시장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비상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 실기하면 환율이 시스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본질을 관통하는 근본대책으로 대응해야 한다.
먼저, 1400원 환율방어선을 견고하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미 통화스와프'를 조속히 체결해야 한다. 금리 수단이 소진된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쓸 수 있는 유일한 정책 수단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것뿐이다. 2020년 코로나발 환율발작 때에도 미국과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발등의 불을 진화한 바 있다. 따지고 보면, 원-달러환율이 본격적인 상승 추세에 접어든 것도 2021년말에 한·미 통화스와프가 종료된 이후부터다.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과 '무기한·무제한' 상설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때다.
끝으로, 진짜 자본시장 체질개선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투기성 자본이 나가고 양질의 자본이 유입되는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만 허약한 증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 기업 벨류업이나 금투세 폐지와 같은 지엽적인 이슈에 집착하기보다는 장기 투자하기 좋은 제도와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송두한 민주금융포럼 상임대표(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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