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 없는 미국 입양인 2만 명, 이게 현실입니다"

김성호 2024. 10. 28.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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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865] 29회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 < K-Number > 조세영 감독

[김성호 기자]

선진국이라고들 한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며 휴대폰부터 자동차, 가전제품까지 한국산 제품이 세계인의 삶 가운데 파고들어 한국의 위상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뿐인가. 노벨문학상을 비롯해 칸과 베니스, 베를린,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세계 유수의 영화제 최고상을 거머쥔 오늘이다. 빌보드 차트 최상단에 오르는 가수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까지 배출한 나라가 또한 한국이니 한 세기 전 김구 선생이 꿈꾼 문화로 번성하는 나라가 이뤄졌다 봐도 좋겠다.

한때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세계 곳곳으로 나라를 떠나는 이가 속출했다. 독일과 사우디아라비아로 노동자를 보내고, 베트남으로 전투병을 파병한 아픈 역사를 건넜다. 그러나 어느덧 아시아 전역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오려는 이주노동자가 끊이지 않으니,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알도록 한다. 어느 지표로 보나 한반도 역사상 가장 번성한 나라, 세계 속에서 제 자리를 확고히 한 국가가 또한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한국의 오늘이 자랑스럽기만 한 건 아니다. 분단 후 70년이 넘도록 통일은커녕 한반도에 평화의 씨앗조차 제대로 심어내질 못했다. 좌우로 갈라진 이념이며 후진적 정치는 국민들에게 경제수준에 걸맞은 사회상을 갖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공동체의 해체와 지역의 붕괴, 참담하기 짝이 없는 수준의 언론지형은 또 어떠한가. 그 모든 부조리와 부정의 가운데서 그래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선 안 된다고 외치는 이들은 얼마나 적고 귀한가 말이다.
▲ K-Number 조세영 감독이 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신설된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받는 모습.
ⓒ 부산국제영화제
'K-Number'는 어떻게 관객 마음을 사로잡았나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설된 상 가운데 다큐멘터리 관객상이 있다. '와이드앵글-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 가운데 관객 직접투표를 통해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을 선정해 시상한다. 첫 수상작은 조세영 감독의 < K-Number >, 해외입양 보내진 이들이 성장하여 한국으로 돌아와선 제 뿌리를 찾는 과정을 비춘다. 그 모습은 해외입양인의 가족찾기에 우리가 기대하는 흔한 장면처럼 아름답지 않다. 그보다는 처절하고 민망한 광경에 가깝다.

그로부터 드러나는 해외입양 제도의 허실, 홀트아동복지회와 같은 민간기관이 지난 반세기 넘도록 아이를 물건처럼 팔아 이득을 챙겨왔음을 드러낸다. 물론 < K-Number >가 해외입양 문제를 다룬 첫 번째 다큐는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주어진 관객상은 영화의 시선과 작품이 담아낸 목소리가 관객의 마음에 가서 닿았단 걸 증명한다. 감독은 어째서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을까. 또 그 결심은 어떻게 이와 같은 작품으로 맺어졌을까.

부산국제영화제 가운데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주최한 어느 모임자리에서 나는 조세영 감독과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그와 그 뒤 다시 나눈 인터뷰를 담는다.

2004년 KBS 시청자제작 프로그램으로 다큐를 제작한 걸 시작으로, 다양한 촬영 작업을 진행해온 조세영 감독이다. 촬영 아르바이트 형식의 일거리는 통상적인 여성이슈부터, 미혼모와 입양기관 문제까지로 가지를 뻗어갔다. 창작자의 관심이 그에 따라 발전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 K-Number 미오카 밀러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 조세영
자기 자료도 못 받는 입양인...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무렵 한국으로 돌아온 여러 입양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입양기관을 찾아가 자기네 원본기록을 찾고 싶다며 같이 가달라고 했어요. 카메라가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요. 앞서 여러 번 입양기관을 방문했던 것 같았는데, 자료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고 했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동행하게 됐죠. 그 자리에서 기관 담당자와 입양인이 싸우는 걸 목격하게 됐습니다. 입양인은 제 정보를 복사해 달라고 소리치고, 기관 담당자는 사유재산이라 내줄 수 없다고 했어요. 당시에 만난 많은 입양인들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단 걸 알게 됐죠."

이 장면은 그대로 < K-Number >의 도입을 이룬다. '내 정보인데 왜 (복사본조차) 주지 않느냐'는 쪽과 '사유재산'이라며 주지 않는 입양기관의 대립, 단 하나의 정보가 간절한 해외입양인이 온갖 규제에 가로막혀 서류 하나를 얻을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이 이어진다. 제 뿌리를 찾아온 입양인과 그 부모의 감격적 상봉, 그와 같은 장면을 기대한 이라면 당혹할 밖에 없다.
"입양인의 분노가 입양기관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한국인에게도 향하고 있었어요. 당시 사회분위기가 '해외입양은 좋은 것'이란 인식이 강했으니까요. 입양기관의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과 입양인의 분노, 입양기관에 아이를 뺏겼다고 울면서 아이를 찾는 미혼모, 무관심한 한국사회까지가 복잡한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것 같았는데... 제가 본 게 뭔지, 어디서도 그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입양문제로부터 한 걸음 떨어졌던 조세영이 다시 답을 구하기 시작한 건 한참이 흐른 뒤였다. 2018년,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추방된 한국 입양인의 이야기를 기사로 접한 뒤였다. 그때부터가 비로소 < K-Number >의 시작이라고 감독은 말한다.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에 출연한 미오카 밀러가 영화제 상영 뒤 직접 발언하는 모습.
ⓒ 부산국제영화제
시민권 없는 미국 입양인 2만 명... 누가 그들을 만들었나
"2019년도에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며 내가 과거에 경험한 일이 15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고, 해외입양인의 수가 2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죠. 그렇다면 단순히 개인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거잖아요. 그때쯤해서 <아이들 파는 나라>란 책을 접하게 됐고 더 많은 부분을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로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 그러나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주변에 해외입양인 관련 다큐를 한다고 하니까, 어느 특별한 한 사람의 기구한 운명 이야기라거나 눈물겨운 상봉을 다루는 걸로 생각했죠. 저는 그런 관점을 원치 않았어요. 한국인들은 기구한 극적 서사여야만 관심을 갖는 것처럼 느껴져 답답했지요. 입양인들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닌데도 입양인이라고조차 말하지 않고 안타까운 입양아라고, 그런 대화만 되더라고요.

입양인 쪽이라고 쉽지는 않았어요. 어떤 때는 매우 호의적이다가도 갑자기 알 수 없게 돌변할 때도 많았으니까요. 한국에서 만난 입양인들은 어느 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로 좁힐 수 없는 여러 결들이 얽혀 있어요. 개개인들이 살아온 삶의 경험과 트라우마가 어느 날 갑자기 올라올 수도 있고요. 미국,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등등, 보내진 나라에 따라 제각기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한국에서 오래 산 이들은 또 한국적인 것까지 뒤섞여 있어서 모두가 저마다 다른 생각과 의견을 펼쳐나가요. 더구나 서구유럽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 말하는 태도나 생각하는 방식이 저한테는 전혀 익숙한 게 아니었어요."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한국 동료들에게 지지받지도, 입양인들 사이로 온전히 녹아들지도 못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해외입양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 본 적 없이 편한 대로만 바라보려는 한국인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입양인 사이에서 의미 있는 시점과 시각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감독의 과제가 됐다.

그 결과일까. < K-Number >는 기존 해외입양인 다큐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 확고한 주인공을 두고 그 서사를 감동적으로 풀어가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단 점이다. 영화엔 미오카와 메리 등 복수의 입양인이 등장하고, 입양인 뿌리찾기를 돕는 시민단체 '배냇' 대표 등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주인공이라 여겼던 이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또 다른 이가 나타나며 뿌리찾기로부터 홀트와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옮겨가는 등 초점이 전환되고 분산된다.

"특별한 개인의 서사로 비치는 걸 경계하기도 했고, 해외입양 체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공고히 구축돼 70년간 이어졌는지, 한국인들은 왜 아무런 의심 없이 해외입양을 좋다고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대체 미국으로 입양 간 2만 명의 입양인이 왜 시민권이 없는지, 이런 질문에 답을 구하고 잘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화자 한 명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어요.

편집을 거듭하며 현재 한국으로 돌아오는 입양인 대다수가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를 관객에게 '체험'시키는 게 핵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어떻게 현재에 이르게 됐는지 그 과거부터 하나씩 풀어나가야 했어요. 물론 시간의 한계가 있으니 모든 걸 말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우선 초중반까지 다소 복잡할 수 있겠지만 입양체계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전달한 거죠. 당시 가담했던 내부고발자, 기자, 해외입양인을 돕는 사람들의 입을 빌려 체계를 전달한 겁니다."

대다수 관객이 생각해본 적 없을 해외입양인의 처지, 그 곤란하고 막막한 상황을 체험시키는 게 < K-Number >의 주된 과제가 되었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그것 만으론 부족할 밖에 없다. 이해를 넘어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선 다음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반이 입양제도의 출범과 현황을 구조화해 전달하는 것이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 K-Number 포스터
ⓒ 조세영

덧붙이는 글 | '씨네만세 866'에서 계속됩니다.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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