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동해 어민 울리는 모래산... 정말 방법이 없을까

진재중 2024. 10. 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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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대부분 항입구에 퇴적물 쌓여... '모래 준설'이란 임시방편 말고 근원적 대책 필요

[진재중 기자]

한 어민이 항구를 바라보며 근심에 잠겼다. 몇 달 전 항구 입구가 모래에 막혀 고기잡이를 포기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큰 파도가 오면 다시 막힐까 걱정이다. 모퉁이에 쌓인 검은 모래가 그의 마음을 짓누른다. 바다에 의지해 사는 어민에게 항구가 막히는 것은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다. 강릉 안인항에서 항구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걱정스런 눈으로 항구를 바라보는 어민
ⓒ 진재중
▲ 안인항 지난 2월21일, 항입구에 퇴적되었던 모래를 준설한 모래가 쌓여있다
ⓒ 진재중
대규모 해상공사가 항구퇴적을 부른다

원래 강릉 안인항은 암반으로 둘러싸여 있어 모래가 퇴적되지 않는 항구였다. 지역민들은 안인화력발전소의 연탄 하역용 방파제 건설 후 모래가 항구 입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지난 2024년 2월엔 항구 입구가 막혀 배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퇴적된 모래를 제거하는 데만 일주일 이상이 걸렸다.

정동진 어촌계장 정상록씨는 "평생 고기잡이를 해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화력발전소 공사 이후 모래가 이동해 항구가 막혔다고 주장한다. 그는 파도가 크게 칠 때마다 항구 입구가 또 막힐까 불안해 새벽마다 항구를 찾는다.
▲ 안인항 강릉안인화력발전소 해상공사장이 항포구를 둘러싸고 있다.
ⓒ 진재중
▲ 강릉 안인항 항입구에 쌓인 모래를 준설하고있다
ⓒ 진재중
얕은 수심으로 어선이 바닥에 부딪혀 고장 나기 일쑤지만, 어민들은 제철인 가자미와 도다리를 잡기 위해 무리해서 바다로 나간다.

한 어민은 "배가 망가져도 바닥 모래를 치고 나갈 수밖에 없다"며, "바다는 우리 어민들의 삶터인데 항구가 막히면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어민은 "매일 항구 입구를 점검하지만, 배가 모래톱에 걸리면 조업은커녕 배까지 망가진다"며 "차라리 어업을 포기하는 게 낫다"고 말하며 발길을 돌렸다.
 항구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가는 어선
ⓒ 진재중
하천에서 흘러온 토사가 항구를 막는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은 항구 건설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동해안은 해안선이 단조롭고 수심이 깊어 항구 건설이 어렵다. 또한 백두대간과 급경사 산지는 모래와 자갈이 하천으로 쏠리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처음엔 해안의 높은 절벽이나 깊숙이 들어간 만, 하천과 같은 조건을 이용해 항구를 만들었다. 태풍이나 큰 파도를 피하면서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장소가 하천하류였다. 그 때문에 동해안 항구는 대부분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고성 대진항에서 삼척 고포항까지 하천을 끼고 있는 항은 대부분 퇴적이 된다.

항퇴적을 조사하는 김진훈 박사는 "동해안 항구는 대부분 하천과 접해 있는 곳에서 퇴적된다. 하천에서 내려온 모래와 자갈이 항입구에 쌓여 어선의 입출항을 막고 있다"며 "항퇴적을 막기 위해서는 모니터링을 통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고성,백도항 백도해변 위쪽, 문암천에서 내려오는 토사가 항입구를 퇴적 시킨다
ⓒ 진재중
▲ 속초 설악항 쌍천에서 내려오는 모래와 자갈로 항입구가 퇴적된다
ⓒ 진재중
▲ 삼척 궁촌항 주천에서 내려온 토사가 항입구를 막는다
ⓒ 진재중
▲ 삼척 신남항 항구 중앙에 하천이흐르고있어 퇴적을 일으킨다
ⓒ 진재중
▲ 삼척시 초곡항 천변에서 내려온 내려온 모래를 준설하고 있다
ⓒ 진재중
강릉 영진항은 연곡천에서 내려온 모래가 항입구를 막는 대표적인 항구다. 오대산과 소금강 지류에서 내려온 토사가 하천하구에 쌓이면서 항입구에 퇴적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항입구에 쌓인 모래가 하얗게 드러난다. 매년 3~4회 준설이 이루어지며,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 없이 단순히 모래를 퍼내는 임시방편적인 처방만 반복되고 있다.

홍성문 영진어촌계장은 "영진항은 항입구가 막히기 전에 강릉시에 요청해 모래를 퍼낸다. 매년 몇 차례 반복적으로 준설을 하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 안타깝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예산도 절약하고 어민들의 불안도 줄일 수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 강릉 영진항 강릉 연곡천에서 내려오는 모래가 하천하류에 쌓여 항입구를 막는다
ⓒ 진재중
▲ 강릉 영진항 항입구에 쌓인 모래를 준설하고 있다
ⓒ 진재중
항 주변 방파제나 구조물도 원인

동해안의 주요 항구는 바닷가 바로 옆의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대륙붕이 없어 곧바로 심해로 들어가기 때문에 거의 직선 형태의 해안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큰 배가 접안하기에는 유리하지만, 만이 없어 항구로 직접 들어오는 파도를 막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동해안 항구주변에는 방파제, 이안제, 돌제 등의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항 주변에 방파제나 구조물을 설치하면 바닷물의 흐름이 변화하게 되고, 이로 인해 모래 퇴적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한국항만협회 강윤구 박사는 "동해안 특성상 큰 파도가 밀려오면 연안침식이나 안전한 항보호를 위해 설치된 각종 구조물이 항퇴적의 원인을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 강릉 주문진항 항주변에 방파제, 이안제, 돌제 등 인공시설물이 들어서있다.
ⓒ 진재중
▲ 아야진항 자연적인 조건이 맞지않아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항구
ⓒ 진재중
▲ 수중방파제(잠제) 삼척 궁촌해변앞, 연안침식 방지를 위해 설치된 구조물
ⓒ 진재중
▲ 돌제 강릉시 주문진항 앞, 연안침식을 방지하기위해 설치된 구조물
ⓒ 진재중
강원특별자치도 고성 반암항은 지난 2006년 항만 공사를 통해 어항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설계 문제로 매년 모래가 항구 안으로 쌓이고 있다. "어민들은 설치된 구조물들이 항구 입구를 막았다"고 주장하며 "항구 앞에 잠제와 돌제를 설치했지만, 배의 입출항에는 효과가 없고 오히려 퇴적만 증가하고 있다"고 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지난 26일 돌아본 반암항엔 준설로 생긴 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어민들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위협으로 느껴졌다.

춘천에서 온 한 관광객은 "어촌 뉴딜 사업으로 새로워진 것이 있는지 궁금해서 왔는데, 항포구 옆에는 큰 낚시터만 있고 항구 앞에는 모래와 자갈만 쌓여 있어 보기 흉하다"고 말했다.
▲ 고성군 반암항 항입구에 퇴적된 모래를 준설하고 있다
ⓒ 진재중
 반암항 입구에 준설한 모래가 쌓여있다
ⓒ 진재중
반복되는 준설작업, 근본적인 대책이 따라야

강원특별자치도와 동해안 시·군이 어항 준설 작업에 사용하는 예산은 매년 약 10억 원이며, 준설되는 모래는 4만여 톤에 달한다. 모래가 쌓일 때마다 단순히 퍼내는 방식의 임시방편적인 처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지난 22대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속초-인제-고성-양양)이 항구 퇴적 문제를 제기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또한 강원특별자치도는 "도내 항포구의 토사 매몰이 심각하므로, 어업인들이 안전하게 어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어항 관리선을 상시 배치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강원특별자치도에는 국가어항과 마을 공동어항을 포함해 총 51개의 어항이 있다. 대규모 어항인 무역항과 국가어항을 제외한 대부분의 항구는 항입구에 퇴적물이 쌓이는 상황이다.
▲ 강릉 안인항 항입구를 막은 모래를 준설하고 있다( 2024년2월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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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반암항 모래가 퇴적된 항입구를 준설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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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는 어선의 주차장으로서 안전해야 한다. 항퇴적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재해 상황이다. 어선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어야 어업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다. 항퇴적 원인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불명확한 응급처방은 어선의 입출항을 방해할 뿐이다. 따라서 모래 퇴적 원인을 조속히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여 어선이 안전하게 입출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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