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어증 환자도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황명화 2024. 10. 28. 10: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환자 마음을 다독이는 것도 치료사의 역할

'언어재활사의 말 이야기'는 15년 넘게 언어재활사로 일하며 경험한 이야기들로, 언어치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글입니다. <기자말>

[황명화 기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저 우는구나 얼굴을 보고서야 알 수 있을 뿐. 목에 기관 절개 튜브를(기도에 튜브를 삽입하여 침과 분비물로 인한 기도 폐쇄를 예방하고, 산소 공급을 하기 위함) 끼고 있는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관 절개 튜브는 종류에 따라 발성이 가능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산소 공급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설계된 안전장치 달고 있어서 소리를 낼 수 없다. 우리의 목소리는 공기가 성대를 통과하며 성대를 진동시켜 나는 구조인데, 이 기관 절개 튜브는 성대 아래쪽에 삽입하기 때문에 공기가 성대를 통과할 수 없고, 성대를 진동시킬 수 없기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했던가! 소리치는 듯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고 "어어어" 하는 모습의 그녀를 보고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좀 더 돌아봐줄까? 이럴 때 한 글자를 더 말하는 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들이 떠돈다. 지금의 치료가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과연 도움이 되고는 있는 걸까?

워낙 실어증이 심한 전 실어증(Global aphasia) 상태인 데다가, 오른쪽 마비가 있어서 글자를 쓰는 활동도 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목소리가 나온다 한들 말을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답답한 것 알아요.
제가 말하실 수 있게 도와 드릴게요.
당장 소리가 나지 않지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저를 보세요.
목소리를 내지 않고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입을 움직여 말할 수 있어요.
표현할 수 있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치료사가 완벽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짐작만 할 뿐. 처음 임상을 할 때 '왜 울까? 치료받는 게 싫은가?' 쪽으로 생각을 했더라면, 지금은 '뭔가 불편한 게 있구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 ▲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타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 miguelbautistadp on Unsplash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말하기 전의 아기들이 자신의 불편함을 울음으로 표현하듯이, 전 실어증 환자들의 경우에도 말을 잘하지 못할 때, 목소리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우는 것으로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우리의 치료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환자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노래 부르기를 같이 해본다. 손을 잡고 박자를 맞추면서 같이 부르는 것. 바라보고 있던 보호자가 놀라며 눈물을 짓는다. 우리가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아무 표현도 안 되고, 아무 말도 못 하던 환자인데도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의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서 함께 입술을 움직이고 있는 그녀는 누가 봐도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말하기를 관여하는 언어중추는 보통 좌뇌에 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를 때 가사는 좌뇌가, 멜로디 영역은 우뇌가 관여해서 노래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다, 부분부분 발음이 불분명하고 다르게 나와서 노래를 하네 정도로만 인식할 수 있다). 말을 못해도 노래를 부를 수 있고 그것이 말하기의 단초가 되어서 점점 더 말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멜로디억양기법(MIT)라고 한다.

그녀는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우울해하며 치료에 비협조적이던 그녀가 노래를 같이 부르다니 나도 사실은 감동이다. 여러 방법들을 시도해도 안 되던 그녀에게 오늘의 노래가 닿아 표현으로 나오다니 말이다.

언어 치료는 국어 공부를 하는 시간이 아니다. '언어'를 그저 '말'에 국한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타인의 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오늘이 그녀가 다시 말하기 위한 첫걸음이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