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 57' 수준 피의자만 지켜본 압수수색…대법 "위법" 제동

김정연 2024. 10.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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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뉴스1


적절한 참여능력이 없는 사람을 참여시킨 가운데 실시한 주거지 등 압수수색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대마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A씨의 사건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2019년 5월 살고 있던 집에서 대마 0.62g이 발견돼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기소됐고 1심에서 징역 10개월, 2심도 항소기각됐지만 또 상고해 대법원의 판단을 구했다.

2019년 A씨의 집을 압수수색할 때 ‘누가 참여했는가’가 문제였다. 당시 A씨의 집 압수수색 영장은 A씨에 대해서가 아니라 A씨 딸에 대해 발부된 영장이었다. A씨의 딸이 필로폰 투약 혐의가 있어 2019년 5월 9일 주거지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고, 경찰은 A씨 딸이 다른 곳에서 재물손괴 등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자 그 즉시 영장을 집행했다. A씨 딸과 함께 아파트로 가서 집을 수색하던 경찰은 안방 금고에서 이 사건 대마를 발견했다. 당시 집에 A씨는 없었고, 압수수색 과정은 A씨 딸만 지켜봤다.

대법원은 A씨의 주거지 압수수색 과정에 문제가 있어 위법수집 증거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은데 이를 심리하지 않은 건 잘못이라며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부분을 파기했다. A씨가 이에 관한 위법수집증거 주장을 하지 않았지만 직권으로 판단했다.

A씨 딸은 지능 57, 사회성숙연령 11세 수준으로 성년후견개시심판을 받은 사람이었다. 대법원은 이런 A씨 딸만 참여한 상태에서 진행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은 위법하다고 봤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 내지 피의자가 압수수색에 참여할 수 있게 해두고, 특히 집 등 몇몇 특수한 공간에 대해선 그 장소의 책임자가 참여하게 규정해뒀다. 영장의 범위 내에서, 압수수색이 적법하게 이뤄지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대법원은 “영장 집행에 참여하는 당사자는 최소한 압수수색 절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참여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영장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법부당한 처분이나 행위로부터 당사자를 보호하고, 영장 집행절차의 적정성을 담보하려는 입법 취지나 헌법적 요청을 실효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의자 내지는 장소의 담당자가 당시 물리적으로 그 자리에 참여했더라도 ‘참여능력’이 없다면 그것만으론 부족하고 이웃 등 다른 사람을 동석시켰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건은 다시 인천지법으로 돌아가 재판을 받게 된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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