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잔칫상 엎어버린 KBO

김민영,문화체육부 2024. 10. 2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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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문화체육부 기자

한국시리즈 1차전 경기 중단
흥행 우려에 '공정성' 건드려
팬보다 경기운영 앞세워서야

한국 프로야구는 사상 첫 10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올해 역대급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프로야구의 가장 큰 이벤트인 한국시리즈(KS)는 전국구 인기 구단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31년 만의 맞대결로 관심을 끌었다.

KIA는 정규시즌 1위로 7년 만에 통합우승과 12번째 챔피언을 노리고 있다. 삼성은 전문가 예상을 깨고 시즌 2위에 이어 KS 진출에 성공, 4년 연속(2011~2014년) 통합우승을 했던 왕조 시절의 재건을 꿈꾸고 있다. 광주로 대표되는 호남과 대구로 상징되는 영남을 연고로 하는 팀 간 경기여서 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미숙한 행정을 보이며 잔칫상을 뒤엎어 버렸다. KS에서 흥행의 일등공신인 젊은 관중들이 역린처럼 여기는 공정성을 건드렸다.

지난 21일 KIA 홈구장인 광주에서 열린 KS 1차전은 비가 오는 가운데 열렸다. 종일 내린 비로 경기를 치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KBO는 예정된 경기 시작 시간을 1시간여 넘기고 식전 행사를 모두 한 뒤 오후 7시36분 ‘플레이볼’을 선언했다. 경기를 강행한 것이다.

이후 문제가 터졌다. 비가 잦아들지 않았다. 6회초 삼성 김헌곤의 홈런으로 1점이 나온 뒤 사달이 났다. 이어진 삼성의 노아웃 1, 2루 기회 때 심판진이 갑자기 경기를 중단시켰다. 비 때문이었다. 오후 9시24분부터 10시9분까지 45분을 기다린 뒤 서스펜디드(suspended·일시정지) 경기가 선언됐다. 43년 리그 역사상 12번째 일이고, 포스트시즌에선 처음 있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스펜디드는 우천이나 시설 고장으로 경기를 진행할 수 없을 때 선언된다. 경기 개시 후 두 팀의 공격·수비 기회가 똑같이 주어졌다면 ‘강우 콜드’로 종료될 수 있으나 이번처럼 삼성이 6번째 공격 중이고 KIA는 5번의 공격 기회만 가졌을 땐 다음 날 경기를 이어가야 한다.

규정상으론 하나도 틀린 게 없다. 그럼에도 팬들은 KBO를 향해 “비가 오면 처음부터 경기를 하지 말지 왜 강행했나,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중간에 왜 끊느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경기가 중단되면서 어느 팀이 유리한지 분명해져 특정 팀을 향한 비난마저 나왔다.

KBO가 이해되는 면도 있다. 지역 인사들이 경기장을 찾았고 각종 행사를 준비했다. 다음날인 22일엔 비가 더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 이틀 연속 경기를 미루기가 부담됐을 수 있다. 결국 22일도 비가 와 연기된 1차전은 23일 오후 4시에 다시 열렸다. 2차전은 1차전 종료 1시간 뒤인 오후 6시30분에 시작했다. 흐름이 끊긴 삼성은 재개된 경기에서 힘을 못 썼다. KIA가 2연승을 거뒀다. 대구로 옮겨 열린 3, 4차전에선 1승씩 주고받으며 KIA가 4전 3승1패로 앞서 있다. 1승만 더하면 우승을 차지한다.

일각에선 KBO가 프리미어12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빗속 경기를 강행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프리미어12는 전 세계 상위 12개 국가가 참가하는 국가 대항전으로 ‘야구 월드컵’으로 불린다. 제3회 대회가 다음 달 9일 개막한다. 한국은 지난 23일 선수단을 소집하며 대회 준비에 나섰다. 다음 달 1~2일엔 쿠바 대표팀과 평가전이 예정돼 있고, 8일 대만으로 출국해 예선을 치른다.

아직 28명의 최종 명단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예비 명단에 KS 중인 KIA와 삼성 소속만 11명에 이른다. 비 때문에 KS 일정이 길어질수록 대표팀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물론 국제대회를 위해 KS를 파행으로 끌고 가는 건 결코 아닐 테다. 그러나 KBO는 선수단과 팬들보다 경기 운영에 더 초점을 맞췄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팬들은 선수들이 좋은 컨디션에서 최고의 경기를 펼치길 바랄 뿐이다. 누가 이기고 지는 것보다 공정한 경쟁을 펼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못한 것에 실망했다. 이 일이 프로야구 흥행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이다. 빌미는 KBO가 제공했다.

김민영 문화체육부 기자 m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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