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영의 마켓 나우] 좋은 경제력 집중, 나쁜 경제력 집중

2024. 10. 2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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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영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초빙교수

한국 경제에서 경제력 집중은 줄곧 중요한 이슈다. 수출 중심으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 집단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문제가 생겼다. 경제 이론에 따르면 독과점 기업은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을 높여 사회 후생을 감소시킨다. 그래서 경제학은 효율과 더불어 공평을 소중한 가치로 삼는다.

경제력 집중은 항상 지양의 대상일까. 미국 사례를 봐도, 한국 경제 현실을 봐도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뉴욕대 토마 필리퐁 교수는 1980년대 이후 대기업 매출 비중의 확대를 포함해 미국 경제에서 집중도가 높아졌음을 발견했다. 주식시장의 양상은 더 심하다. 애플·엔비디아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의 시가총액은 S&P500 기업 시가총액의 34%까지 커졌다.

김지윤 기자

주목할만한 집중도 사례가 많다. 미국은 지난 40년간 집중도가 상승한 산업에 생산성 향상이 나타났다. 조지타운대 샤랏 가나파티 교수에 따르면 각 산업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기업들은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올리지도 않았다. G7에서 미국 GDP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40%에서 현재 50% 수준으로 증가했다.

따지고 보면 집중도 상승은 많은 경우 경제 역동성의 이면이다. 새로 생긴 산업에서 경쟁력 있는 소수 기업의 매출과 수익이 탁월하게 높은 것은 당연하다. 특히 요즘처럼 신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경우, 해당 산업 부문이 경제 전반을 선도하는 가운데 선두 기업들이 빠르게 커가는 불균형 성장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스럽기까지 하다. 매그니피센트7의 기업가치가 높은 것도 수익성보다 혁신과 성장성을 고려하는 시장의 기대에 기인한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ceteris paribus)’ 높은 집중도보다 낮은 집중도가 분명 나을 것이다. ‘다른 조건이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저성장 경제에서 집중도가 낮은 것이 고성장 경제에서 집중도가 높은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날 역동성의 상징이었던 한국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장기 둔화세를 보이는 세계경제에 비해서도 활력이 약하다. 탁월한 성과를 내던 국가대표 기업마저 수월성을 잃어가고, 새로이 성장하는 산업, 새로이 부상하는 기업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의 산업구조 분석에서 산업간·산업내 집중도가 약화되는 모습이 나타난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공평의 지표로서 분산화는 가치 있는 목표다. 그렇지만 분산이 경제의 전체 구성원들, 투자자들에게 더 높은 만족을 줄 수 없다면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혁신을 기반으로 얻은 독과점적 지위라면 그 지위에 대한 제약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공평과 분산이라는 이름으로 혁신을 막아선 안된다.

신민영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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