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국정감사 태도불손죄

성지원 2024. 10. 28. 00: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지원 정치부 기자

한 번쯤 다들 경험이 있을 것 같다. 엄마랑 말다툼 끝에 골 난 채 방에 뛰쳐들어간 경험. 일부러 문을 쾅 닫았다가 엄마가 “너 다시 나와봐”라고 해서 간담이 서늘해진 경험. 문가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바람이 그랬어”라고 변명해본 경험 말이다. 이미 늦었다. 그날따라 하필 전완근 힘이 좋았고, 하필 집은 적막했다. 원죄보다 ‘태도불손죄’로 들은 잔소리가 더 길었다.

이 찌질한 경험이 인류 보편의 경험인 건 성인이 돼서 알았다. 이글루에 사는 이누이트나 천막 게르에 살던 몽골인 빼고 시대·장소 불문 늘 사춘기 자녀의 문은 바람이 세게 닫았고 엄마는 다시 나와보라고 했다. 보편 경험 기저에는 아주 간단한 인성 교육이 숨어있다. 언제나 중요한 건 태도라는 점이다. 반대로 예를 갖춰 반성하는 태도로 잘못을 특별사면 받은 기억도 있다. 사과를 잘 배우면 쓸데없는 자존심 부리지 않고 내 뜻을 점잖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법을 안다. 태도가 문제가 되면 본질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오른쪽)이 일어서고 있다. [뉴스1]

올해 국정감사에선 시간 아까운 태도 논란이 반복됐다.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선 증인으로 출석한 김택규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이 위원 질의에 비꼬듯이 “네~”하고 대답했다가 호통을 들었다. 같은 날 이기흥 대한체육협회장은 위원 질의를 여러 차례 끊으며 “잠깐만요! 설명을 들으세요!”라고 되레 언성을 높였다. 23일 외교통일위원회에선 대북전단을 살포해 온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야당을 향해 “이건 뭐 (북한) 최고인민회의야? 내가 지금 법정에 섰냐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긴 고위공무원부터 고압적 태도가 기본이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24일 국방위원회에서 박범계 의원을 향해 “의원님이 창피할 것 같다. A, B, C도 모르고 질문하시는 것 보니까 정말 너무하신다”라고 비아냥댔다. 23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선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혼잣말로 “아 씨×, 사람을 죽이네 죽여”라고 했다가 감사가 중단됐다. 국회 무시가 도가 지나친 것 같지만, 국악인을 향해 “(청와대가) 기생집인가”라고 한 양문석 민주당 의원, 피감기관을 향해 “이 자식”, “새×” 등 욕설한 김우영 민주당 의원 등 국회도 피감기관의 태도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억울해도 엄마는 엄마듯 국회가 욕만 먹어도 국정감사는 국민의 대표가 1년 행정을 살피는 중요한 자리다. 이때만큼은 말투가 거슬려서, 비웃어서, 말을 끊어서 낭비할 시간이 없다. 태도 논란에 감사해야 할 행정과 의혹의 본질이 가려진다. 피감기관은 답답해도 좀 참고 국회의원은 감정이 북받쳐도 인간적 예의는 갖췄어야 한다. 그러나 태도불손죄에 감정만 상한 채 22대 첫 국감이 속절없이 지나간다. 어쩌나. “너 다시 나와봐” 할 수도 없는데.

성지원 정치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