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선, 여당 과반 불확실”…이시바 총리 취임 한달 만에 위기
27일 치른 일본 중의원 선거의 출구조사 결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할 것으로 예측됐다. 또한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과의 합산한 연립여당 의석 수도 과반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정치자금 스캔들과 고물가 속에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의 패배가 확정될 경우 당내 입지가 약한 이시바 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는 등 정국 혼란이 예상된다.
일본 NHK는 이날 오후 8시 투표 종료와 함께 자체 출구조사 결과 이시바 총리가 총재로 있는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과반(233석) 의석 확보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NHK 조사에 따르면 자민당은 전체 465석 중 153~219석을, 공명당은 21~35석으로 예상돼, 기존 의석수(279석)에 비해 여당 의석(174~254)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아사히신문의 자체 출구조사에선 자민당이 약 185석, 공명당이 26석 전후를 확보하는 것으로 예상돼 여당이 과반 달성에 실패할 것으로 나타났다.
자민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1954~2022) 전 총리가 야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2012년 이래 총선에서 단 한 차례도 자민당 단독 과반의석을 놓친 적이 없다. 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게 되면 자민당이 정권을 야당에 내준 2009년 이래 15년 만의 일이 된다. 최종 정당별 의석수는 개표가 끝나는 28일 새벽에 발표되는데, 지역구(소선거구·289석)와 정당별 득표수에 기반한 비례(176석) 의석이 확정된 뒤 최종 집계된다.
이번 총선에서 '정권 교체'를 앞세운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가 이끈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NHK는 현행 98석에서 128~191석까지 의석을 대폭 늘릴 것으로 전망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야당이 전체 의석의 30%(140석) 이상 차지한 것은 1996년(신진당·156석)과 2003년(민주당·177석)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 특히 매체는 2003년 중의원 총선에서의 야당 약진이 2009년의 정권교체로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장기간 지속됐던 자민당 독주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시라토리 히로시(白鳥浩) 호세이대(法政)대 대학원 교수는 중앙일보에 “자민당을 중심으로 오랜 시간 이어져온 일강다약(一强多弱) 정당 시대가 끝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자민당의 연립정권 확대 가능성을 전망했다. 그는 “이시바 총리로선 우선 향후 정권 안정을 위해 ‘안정 다수’인 244석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일본유신회 등과 연립을 꾸릴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정권운영을 위해선 17개 상임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다수 차지할 수 있는 의석이 필요한데, 244석이 첫 기준이 된다는 얘기다.
여당 과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시바 총리가 공명당 외에 연립정권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언급되는 곳은 국민민주당과 일본유신회 등이다. 자민당과 정책적 유사성이 높은 국민민주당은 기존(7석)보다 20~33석으로 의석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우익 성향의 일본유신회는 이번 총선에서 의석이 현행(43석)보다 다소 변동이 있는 28~45석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시바 정권의 운명도 좌지우지될 전망이다. 여당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경우 당장 이시바 총리가 사임하진 않는다고 해도 당내에서 ‘끌어내리기’ 목소리가 커질 수 있어 정권이 단명할 가능성이 있다. 김경주 도카이대(東海)대 국제학과 교수는 ”이시바 정권이 여당 과반 의석을 가까스로 확보한다 하더라도 정권 기반 자체가 나약한 채로 출발하게 된다”며 “이 경우 이시바 정권으로서는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 보다 당내 조율을 통해 보수적인 정권 운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에 등돌린 민심
이시바 정권의 저조한 성적표 배경엔 정치자금 스캔들이 있다. 지난해 말 도쿄지검 특수부 수사가 시작되면서 민심은 옛 아베파가 이끌던 자민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보궐선거에서 대패하자, 지지율 하락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 8월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자민당 ‘정치개혁’의 주자로, 바통을 이어받은 건 자민당의 오랜 비주류 이시바 총리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 9월 27일 총재선거에서 승리한 뒤 사흘만에 조기 총선 의사를 발표했다. “야당과 논의해 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자민당 집행부의 의견을 따르면서 이시바 총리의 ‘쇄신’ 이미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 1일 이시바 정권이 출범하고, 중의원 해산(9일)과 선거 고시(15일) 등 선거 일정에 돌입하면서 민심은 악화하기 시작했다. 고물가대책, 최저임금 등 정책 선거가 아닌 ‘비자금 정권 심판’으로 바람이 바뀌면서다. 시발점은 비자금 의원 공천이었다. 이시바 총리는 이들 의원 공천에 대해“철저히 논의하겠다”며 공천 배제를 시사했다. 하지만 “당 융합”을 우선시하는 자민당 집행부 의견에 따라 ‘원칙적으로 공천하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자민당은 12명의 연루 의원을 공천명단서 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비자금 문제에 연루된 의원 40여 명이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야당의 비판이 급증했다. 선거 운동 초반만 해도 이시바 총리는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지키겠다”며 “방위력 강화”를 강조했지만, 중반에 접어들며 “여당 과반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토로로 바뀌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번 선거에 대해 “정책 면에서도 이시바 컬러가 충분히 발휘됐다고 어려웠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선거 후반 악재가 터지며 이시바 총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는 지난 23일 공천에서 배제된 의원들이 당지부 대표로 있는 곳까지 자민당이 2000만엔(약 1억8500만원)을 지급했다고 보도하며 논란의 불을 지폈다. “사실상 공천 아니냐”는 야당 비판이 거세졌고,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전 자민당 정조회장까지 나서 “달갑지 않은 이야기”라며 자금 반환을 발표했다. 정치개혁과 자민당 쇄신을 앞세운 이시바 총리에겐 타격인 셈이었다. 이날 출구 조사 결과에 대해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도 “정치자금 문제를 마무리 짓지 않은 것도 혹독한 심판의 원인”이라고 언급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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