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누워 있는 동안 [김선걸 칼럼]
중국이 뉴스에서 사라졌다. 가끔 들리는 소식도 주로 암울한 것들이다. 3분기 성장률이 4.6%를 기록하며 연 5% 성장도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서 대규모 경기 부양이 시급해졌다.
당초 2조위안(약 388조원) 얘기가 나오다가, 4조위안(약 776조원)에서, 이제는 12조위안(약 2327조원)을 투입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엄청난 액수니 일정 부분 효과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대감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중국 경제 구조상 돈이 순환되지 않고 증발돼버릴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부동산과 부채 중심으로 성장해왔던 경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중국 정부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을 하며 내수 비중도 높이려 하지만 쉽지 않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주 “수출 위주의 경제 모델이 소비자 위주로 바뀌지 않을 경우 성장률이 4%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수출 드라이브로 상대국들의 경계감이 높아졌다. 실제 한국도 이미 지난해 대중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 180억달러 역조를 기록했다.
수출 위주 경제가 아킬레스건이라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 확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중국 때리기’가 트레이드마크다. 트럼프가 당선되는 순간 중국 경제는 거대한 장애물에 직면할 운명이다. 중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비슷해진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미국 내 ‘중국통’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의 분석이다.
미국·유럽에 있는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라로 최근 한국·일본이 많이 언급된다. 예를 들어 서구의 전시회나 공연에선 관행적으로 동양 문화에 배정하는 일정한 ‘할당(slot)’이 있는데, 한때 압도적이었던 중국이 위축되고 한·일이 대체한다고 한다. 최근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의 영화, 드라마가 세계 시장을 휩쓴 것도 이런 측면이 있다.
필자 세대는 ‘영웅본색’ ‘천녀유혼’ 같은 홍콩 영화를 보고 자랐다. 홍콩 영화는 한계가 없었다. 예를 들어 총을 쏴대고 폭력이 난무하는 누아르 장르부터 이념 소재까지. 한국에선 독재 정부가 검열해서 제작이 불가능했지만 홍콩은 자유로웠다. 그런데 1997년 중국이 홍콩을 반환받은 이후, 오히려 홍콩에선 ‘대한뉴스’ 격의 애국계몽 영화만 만든다. 반면 한국 영화가 무한한 창의성을 자랑하고 있다. 어느 쪽이 경쟁력이 있을지는 자명하다. 실제 최근 IMF가 발표한 소프트파워지수는 한국이 1.68점으로 세계 1위다. 이어 일본, 독일, 중국 순서다.
중국 사회가 위축되는 본질적 원인은 정치 제도 때문이다. 개혁 개방의 덩샤오핑 시대, 자유와 창의가 부여된 중국은 비상하는 용이었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이후 사회를 옥죄고 검열하고 있다. 중국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 경영자들은 사석에서 “시진핑 체제가 지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중국이 공산 독재로 위축돼 한국 기업이 혜택을 본다는 뜻이다. 여기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에는 엄청난 축복(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이 중국을 더 압박할 것이라는 얘기다.
14억명 인구의 잠재력을 지닌 중국은 누워 있는 거인이다.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의 말을 빌려본다.
“중국의 성장은 언젠가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정치 제도가 착취적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 한 중국의 성장은 태생적 한계가 있다.” 중국은 이런 조언을 듣고 변신을 시도할 의지가 있을까.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2호 (2024.10.30~2024.1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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